[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스포츠인 2세'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차범근-차두리(축구), 허재-허웅(농구)은 스포츠계에서 유명한 부자(父子)다. 골프계에도 '스포츠인 2세' 바람이 휘몰아쳤다. 주인공은 안재형(50)-안병훈(23) 부자다. 안재형은 골프가 아닌 탁구 선수 출신이다. 그러나 이들 부자는 지름 4cm대의 작은 공을 갖고 스타가 됐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지닌다.
안병훈은 25일(한국시간) 유럽프로골프투어 메이저대회 BMW PGA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는 이날 잉글랜드 서리주 버지니아 워터의 웬트워스클럽 웨스트코스(파72·7,302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이글 1개, 버디 5개를 기록하며 7언더파 65타를 기록했다.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를 적어낸 안병훈은 프로 데뷔 5년 만에 정규투어 첫 우승을 달성하며 상금 94만 달러(약 10억2,000만원)를 손에 넣었다. 이번 우승으로 세계랭킹도 껑충 뛰어올랐다. 안병훈은 25일 발표된 세계남자골프랭킹에서 2.40점을 받아 지난주 132위에서 54위로 도약했다.
안병훈의 우승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이는 바로 아버지 안재형이다. 한껏 들떠 있었지만 그는 "경기 모습을 TV로 지켜보고 (안)병훈이에게 간단한 축하 전화만 했다"고 밝혔다. 안재형은 한때 아들의 캐디를 자처했다. 아들이나 딸의 캐디 생활을 하는 '골프 대디'들은 많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김보경(28)의 아버지 김정원씨도 그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안재형의 경우 아들의 성적에 함께 '일희일비'하는 경향이 있어 캐디 생활을 그만뒀다고 한다. 때로 냉정한 조언을 건네야 하는 캐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안재형과 아내 자오즈민은 탁구로 명성을 떨쳤지만, 아들의 골프 성적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안병훈은 7살 때 처음 골프 클럽을 잡았다. 이후 아버지를 따라 2005년 12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안병훈은 키 186cm에 몸무게 96kg으로 상당히 큰 체격이다. 부모처럼 탁구를 하기에는 순발력과 스피드 등 부족함이 많았다.
그러나 골프를 할 때는 건장한 체격의 덕을 봤다. 강건한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타력은 일품이다. 이번 시즌 유럽투어에서 그의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는 304.9야드에 이른다. 이 부문에서 안병훈은 전체 206명 중 13위에 올라 있다.
아버지 안재형과 어머니 자오즈민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각각 한국과 중국 국적으로 동메달과 은메달을 딴 탁구 스타다. 안병훈이 부모의 '스포츠 DNA'를 물려받은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승승장구만 해왔던 것은 아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9년 US아마추어 챔피언십서 역대 최연소인 만 17세 11개월로 우승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린 뒤 2010년 UC버클리에 진학했지만 1년 만에 프로로 전향했다. 2012년부터는 한동안 유럽 2부 투어 생활을 했다.
유럽 2부 투어에서 실력을 쌓던 안병훈은 이듬해 준우승의 성적을 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8월 2부 대회인 롤렉스 트로피에서 정상에 서며 올해부터는 1부 투어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갔다. 그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유럽투어 상금과 평균 타수 부문에서 모두 3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선수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사진= 자오즈민, 안병훈, 안재형(왼쪽부터 순서대로).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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