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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제주의 미소

입력
2015.05.2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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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서귀포에서 열린 한 세미나 덕분에 오랜만에 제주도를 다녀왔다. 모처럼의 제주 공기는 달았고 제주의 볕 또한 눈이 부셨다.

한 식당에 들렀을 때다. 맛깔진 밑반찬이 일찍 떨어져 식당 종업원을 부르는 소리가 잦아졌다. 일행들은 음식을 나르는 젊은이들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조금은 굼떠 보였고 무뚝뚝한 표정이 불친절하게 느껴진 것이다. 한 일행은 “저 친구는 분명 아침에 엄마에게 혼이 났거나 용돈을 받지 못했나 보다”고 귀엣말을 걸어왔다. 다른 일행도 “손님을 무서워하는지 일부러 얼굴 마주치길 피하는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서울의 상냥한 미소와 재바른 응대에 익숙한 이들에겐 지역의 묵뚝뚝한 서비스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엔 제주의 식당 종업원들은 나름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였다. 매번 부탁할 때마다 밑반찬을 정갈하게 접시에 담아 내왔고, 물 등 필요한 것들을 성심껏 챙겨주었다. 단, 발걸음과 손놀림이 빠르지 않았고 얼굴에 미소가 없었을 뿐이다. 주로 스스럼 없는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하던 식당 영업에 굳이 웃음을 파는 훈련까지는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강원 정선의 고한이나 사북 근처 식당들 서비스가 꽤 세련돼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곳도 여느 지방의 작은 마을처럼 투박한 서비스가 일상이던 곳이다. 그곳의 서비스 개선은 카지노에서 몽땅 떨린 대도시 출신의 유한마담들에 의해 이뤄졌다고 한다.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처지가 된 그들은 식당 종업원으로라도 취업을 하며 카지노 곁을 헤매었고, 서울 부산 등에서 손님으로 체화된 식당 서비스를 몸소 종업원이 되어 실천하며 지역의 서비스 수준을 높였다는 이야기다.

지역을 오래 다닌 경험상 개인적으론 세련된 서비스 보단 오히려 무뚝뚝한 서비스가 마음에 와 닿는다. 과잉을 덜어낸 그 투박함에서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정성을 발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면 근육을 당기며 억지 미소를 짓는 훈련을 받지 않았을 뿐 손님을 인간으로 맞는 기본 심성은 더 진하고 끈끈했다. 한 두 마디 대화 만으로 금세 마음을 열고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어주는, 그들의 사람 냄새 나는 서비스가 좋은 것이다.

일정이 끝나고 들른 절물휴양림에서 버스기사겸 가이드는 너나들이길을 추천했다. 1시간 코스로 절물오름의 허리를 휘감아 돌며 제주의 푸른 녹음을 체험할 수 있는 코스였다. 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나무데크가 이어져 흙을 하나도 밟지 못했다. 발로 흙을 디디지 못하니 자연과 하나가 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 길을 걸으며 이 휴양림의 관리자는 나무데크를 마치 세련된 유행의 첨단 공법이라 생각하며 설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사 우리 국립공원 탐방코스의 상당 부분은 철계단과 나무데크로 포장돼 있다. 하지만 미국 캐나다 등 선진 국립공원 문화를 가진 나라에 나무데크가 온 산을 뒤덮었다는 이야긴 듣지 못했다.

제주는 요즘 개발광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버스 차창에 스친 풍경 속에서도 쉽게 그 상흔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망이 괜찮다 싶은 곳은 죄다 공사판이었다. 화산섬의 상징인 아름다운 해변 자락이 콘크리트 건물 군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제주의 청정 공기와 자연에 흠뻑 빠진 중국인들이 대규모로 투자에 나서고, 제주 도민들이 ‘육지것’이라고 폄훼하는 내륙인들이 돈바람을 타고 몰려들며 빚어낸 풍경들이다. 중국인들과 내륙인들의 광적인 개발열풍 속 정작 제주도민들은 쏙 빠져있는 모양새다.

차이나머니로 제주가 개발되는 것을 무조건 막을 순 없겠지만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제주의 풍경이 영영 훼손되는 걸 그냥 두고 보자니 착잡했다. 제주 관광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던 제주 올레길의 일부 코스도 개발의 여파로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지금 당장 돈 몇 푼에 제주의 땅과 풍경이 팔려 넘어가고 있다. 그 사라지는 풍경과 함께 투박하지만 풋풋했던 제주의 미소마저 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는지.

이성원 사회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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