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 2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 신양관 세 곳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양일간 교수들과 재학생들은 물론 졸업생들까지 분향소를 찾아 영정사진 앞에 서 고개를 숙였다. 이들이 추모한 사람은 21일 밤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명예이사장이었다. 생전에 서울대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과 도서관 건립비로 써달라며 450여억원을 기부한 정 이사장을 기리기 위해 많은 이들이 분향소를 찾은 것이다.
정 이사장은 거액의 돈을 사회에 쾌척할 만큼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서울대 동문들은 그를 평범한 할아버지로 기억했다. 2002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재직 시절 정 이사장과 인연을 맺은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처음 같이 밥을 먹은 곳이 이사장 단골가게인 4,000원짜리 칼국수 집이었다”며 “이사장은 중국집에서도 짜장면, 우동 등 저렴한 음식을 먹고, 남은 음식은 싸갈 정도로 절약정신이 강했다”고 회고했다. 김 전 장관은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한 정 이사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러 그의 사무실에 찾아갔다가 별다른 가구 없이 책들만 가득하고, 그나마 있는 소파도 다 뜯어져 닳은 모습을 보고 놀란 경험도 있다.
1952년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정 이사장은 1967년 태성고무화학을 설립해 국내 최초로 공업용 특수고무 제품을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정 이사장은 1987년 1,000만원을 시작으로 150여차례에 걸쳐 총 451억원을 모교에 기부해 인문대ㆍ사회대ㆍ공대 등 3곳에 신양학술정보관을 지었다. 서울대 학생 820명이 25억6,500만원의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화학생물공학부 졸업생 문주용(30)씨는 “6년 전 동창회 행사 때 할아버지를 처음 뵀는데 10년은 족히 된 것 같은 낡은 양복을 입고 있으셨다”며 “큰 부를 이루고도 그렇게 검소한 생활을 하는 분일 줄 몰랐다”고 했다. 정 이사장을 ‘신양 할아버지’라 불렀던 서울대생 390명은 2010년 ‘신양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나눔의 뜻을 함께 하자’며 1,000만원을 모아 관악구에 거주하는 중ㆍ고교생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도 정 이사장을 기리는 추모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별세 소식을 처음 알린 ‘신양 할아버지께서…’라는 글에는 200여명의 학생들이 댓글을 달았다. ‘당신께서 만들어주신 계단 덕분에 현재 저의 꿈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사장님이 살아오신 삶이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됐음을 새삼 느낍니다.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등 졸업생들의 댓글도 눈에 띄었다.
이우일 서울대 연구부총장은 “돈은 분뇨 같아서 한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지만 밭에 풍성하게 뿌리면 고루 수확한다는 것을 평생 신조로 사신 분”이라고 정 이사장을 평가했다. 김도연 전 장관은 “정 이사장의 아호 ‘신양’은 태양을 믿는다는 의미”라며 “힘들어도 내일 태양이 뜨니 이를 믿고 힘내자고 스스로 용기를 북돋던 그분의 정신이 후배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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