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은행들 수익 빨간불, 전세계 순위서도 하위 그룹에
新금융서비스 핀테크 황금알로, IT 공룡들도 앞다퉈 진출
국제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영국 금융 전문지 ‘더뱅커’가 작년 7월 발표한 세계 100대 은행 순위에는 국내 은행의 이름이 5개가 포함됐다. 하지만 KB국민은행(68위) 신한은행(69위) 우리은행(75위) 산업은행(78위) 하나은행(84위) 등 모두 50위권 밖이었다. 기본자본의 경우 300억달러가 안돼 최하위그룹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수익성이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뺀 국내 4대 은행의 2013년 순이익은 2012년 대비 23.2% 감소했다. 총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총자산순이익률(ROA)은 평균 0.53%로 글로벌 100대 은행을 보유한 22개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에 그쳤다.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지역 은행보다도 저조한 실적이다.
‘경제 혈관’ 역할을 하는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성장성·수익성 모두 위기에 처해 있다. 은행뿐 아니라 증권, 보험 등 제 2금융권도 이 같은 위기에서 예외인 곳은 없다. ‘금융의 삼성전자’ ‘한국의 골드만삭스’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벌써 수년 째 지속되고 있지만, 금융업의 시계는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위기가 금융위기 등 외부 변수에 의한 일시적인 침체가 아니라 저성장과 저금리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구조적인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핀테크(Fintech)바람이 거세지며 비금융업과의 경계가 사라지는 등 금융산업은 미래를 예단할 수 없는 거대한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위기 의식이 높아지는 만큼 금융산업 혁신에 대한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혁신에 성공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자수익 위주의 단순한 수익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핀테크 시대에 부합하는 사업 모델 개발에 나서는 등 금융권에는 어느 때보다 과감하고 빠른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해외진출, 선택 아닌 필수
국내 은행들이 세계 50위권 내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해외사업 비중이 현저히 낮아서다. 2013년 말 기준 스위스 UBS의 해외사업은 영업이익의 61.3%, 싱가포르 DBS는 33.7%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국내은행 4대 은행의 해외 영업이익 비중은 4% 남짓에 그친다. 해외점포 자산 비중 역시 작년 말 기준 국민은행 1.82%, 우리은행 5.97%, 외환은행 15.06%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사인 JP모건이 지난 2013년 말 기준 29.1%, 일본 3대 금융그룹인 미즈호가 44%대의 해외 자산 비중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는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그나마 은행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국내 금융사의 해외점포 수익비중을 보면 2014년 기준으로 은행은 7.82%에 달했다. 반면 증권은 4.84%에 그쳤고, 생명보험(-0.79%)과 손해보험(-0.001%)은 오히려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우물 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년 간의 노력이 일부 결실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은행들의 해외시장 진출은 최근 몇 년 사이 속도가 부쩍 빨라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외환), 인도네시아·캄보디아(우리), 미얀마(하나) 등 4개 법인을 포함해 총 10곳의 점포가 신설됐고, 올해에도 중국 충칭 지점(우리), 베트남 호치민 지점(신한, 하나) 등 새로운 거점이 늘어나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의 지원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해외진출의 경우 국가 차원의 적절한 인프라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금융사 간담회에서 “저성장·저금리로 경제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더 이상 국내시장만으로는 금융산업이 성장하기 어렵다”며 “해외진출 만큼은 정부와 금융사가 한 몸이 되어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현재 금융회사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관련 규제를 전수 조사 중이다.
강종만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무역진흥공사의 기능에 해외 금융시장 조사와 현지 네트워크 구축을 추가하는 등 금융사의 해외진출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지원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핀테크라는 또 다른 도전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ique)의 합성어인 핀테크는 올해 금융업계를 강타하는 가장 뜨거운 이슈다. 핀테크는 금융거래의 구조, 제공방식, 기법 등에 있어서 새로운 형태의 금융서비스를 의미한다.
핀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은 금융산업의 변화를 촉진하는 시발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금융 IT 서비스가 오프라인 지점을 거점으로 이뤄졌다면 핀테크 시대의 금융환경은 스마트폰을 매개로 플랫폼 업체와 인터넷 기업들이 직접 금융업무를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1897년 한성은행 설립 이후 110년 넘게 이어져온 전통적 금융업의 근간이 바뀌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하성근 연세대 명예교수는 “과거부터 금융 혁신은 자동화기기(ATM) 등 IT기술이 계기가 돼왔다는 점에서 핀테크 역시 금융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핀테크에 대한 국내 금융사들의 대응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현저히 뒤처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핀테크는 지급결제 분야에 특화된 서비스에 집중돼 있고 비금융기업들의 역할은 은행들의 지급결제를 매개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이는 이웃나라 중국이 유연한 금융규제를 앞세워 핀테크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는 점과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금융기관들은 여기서 더 밀리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뒤늦은 출발을 만회하기 위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속도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당국 역시 핀테크 산업 육성을 위해 규제를 정비하고 다방면의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장효선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에서는 찾기 쉽지 않지만 IT 혁신을 통해 금융사가 변신에 성공한 사례가 해외에서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다”며 “금융업계의 대응에 따라 핀테크는 새로운 혁신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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