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라는 표현이 과연 적확한 걸까. 굳이 어릴 동(童)자를 붙여 연령을 나누는 건 편견의 발로 아닐까. 그런 구분은 물론 어른들이 한다. 뭘 얼마나 분별 잘 하고 아이들을 아끼시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그런 분별은 차고 넘친다. 동화책이라 불리는 아이들‘용’ 책을 쓰고 고르는 것도 어른들 몫이다. 아이들은 선악미추 판별력이 모자라니 곱고 착하게 자라려면 이러저러한 것들을 골라 읽어야 한다는 지극한 배려가 거기엔 있는 모양이다. 근데, 좀 이상하다. 막말로, 아이들은 눈 귀가 없나. 아이들의 호오엔 근본적인 하자가 있는 건가. 뇌 발육이야 당연히 어른에 못 미치겠지만, 감각만은 더 분명하고 솔직하다고 여긴다. 어른들처럼 이거 저거 재면서 꼼수 부릴 여지도 적다. 아이들 노래만큼 명료하게 심금에 닿는 노래도 드물고, 세상의 많은 좋은 노래는 ‘동요’의 패턴과 스케일을 닮는다. 더 좋은 노래는 아이가 제멋대로 흥에 겨워 불러대는 노래다. 글도 마찬가지. 모든 글이 세상의 판단이나 규칙에 맞아야 할 필요는 없다. 아이일 때는 더 그렇지 않겠나. 뭘 보호하겠다고 금 긋는 것 자체가 종종 감옥이 되곤 한다. 예컨대 ‘자연보호’ 같은 것. 자연이라는 ‘더 큰 어른’이 들으면 네까짓 게? 하면서 콧방귀 뀔 일. 자연이든 아이든 뭘 자꾸 보호하려 들지만 말고 나부터 잘합시다, 어른 여러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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