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의 꿈을 좇아서… 군인이나 경찰, 스포츠 外
현대사회 금기가 된 폭력 ·호전성 IS식 명분 제공, 환상을 현실로
대안적 공동체를 찾아, 전근대적 이슬람 공동체에 향수
인간적 욕망 실현 창구로… 혼인·금전·모험 판타지 제공
1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김 모군의 과격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가입 사건도 어느새 잊힌 듯하다. 하지만 ‘IS에 가담하는 청소년들’이라는 현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스페인 그리스 등지의 많은 청소년들이 IS에 가입하거나 가입을 시도하다가 현지 사법당국에 검거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여전히 세계의 많은 청소년들이 IS의 메시지를 추종하고 지지한다. 반인륜적인 폭력집단에 왜 세계의 청소년들은 열광하며 동참하려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과 너무 다른 현실을 접하면 격렬한 인지부조화를 경험한다. 인지부조화는 현실과 자신의 믿음과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불편함이다. 이 때 대부분 일차적으로 현실 자체를 부정한다. 하지만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어지면 자신의 기존 인식 틀로 설명하려고 한다. 발생한 현상을 예외적 대상으로 치부하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김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인지부조화 현상이 나타났다. 보도 초기에 이는 오보이거나 다른 여행 목적이 있거나 납치된 것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김군이 자발적으로 IS에 가담한 것이라는 사실이 점점 확실해지자, 김군은 ‘은둔형 외톨이’라며 예외적인 심리적 특성을 가진 유별난 청소년으로 묘사됐다. 이런 설명을 통해 김군의 사례는 예외적 현상으로 채색돼 우리의 일상에서 제거됐고, 이를 통해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려 했다.
하지만 은둔형 외톨이 모델이 심리적 불안을 달래줄 수는 있지만 김군과 비슷한 청소년들이 잇따라 IS에 가담하는데 대한 적절한 대답은 아니다. IS에 가담하는 많은 청소년들을 모두 은둔형 외톨이라는 예외적 현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이 현상은 보다 깊이 이해되어야 하고 분석돼야 한다.
전세계 청소년들이 IS에 가담하는 현상은 여러 이질적인 이유들의 조합으로 설명 가능하다. 이들은 서로 다른 동기를 가지고 서로 다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IS에 가담한다. 이스라엘의 자살폭탄 테러 연구에서 이러한 동기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성전에 참여한 전사에게는 사후(死後)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매력적인 여성이 주어진다는 과격 이슬람단체의 거짓 유혹에 넘어가 자살 테러에 참여하는 청소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청소년은 친한 친구와의 우정과 의리 때문에 참여하기도 하며, 또 자신의 죽음으로 가족에게 주어지는 보상 때문에 아니면 애국심이나 복수심 때문에 자원한다. 여성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아버지의 권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모험심이나 사회적 지위의 상승을 위해 자살테러에 자원하기도 한다.
IS에 가담하는 청소년의 특성을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전사의 꿈’을 쫓는 유형이다. 김군에게서 이러한 특성들이 관찰됐다. 전사의 꿈은 전장에서 용맹을 떨쳐 전투에서 이룬 공적을 통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지와 인기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다. 현대사회는 폭력, 잔인함, 사나이다운 호전성, 싸움 능력과 용맹한 기질, 힘에 대한 존중 등과 같은 가치들을 비도덕적이거나 야만적인 것으로 가치절하거나 금기시한다. 반면 공감과 화해, 설득과 온화함, 비폭력적인 태도들은 권장되고 찬양된다. 때문에 비이성적 비합리적 반인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전사의 꿈은 오늘날 매우 제한적인 경로로만 실현 가능하다. 군인이나 경찰 등의 직업을 갖거나 격투기나 축구 등과 같은 스포츠 스타가 되는 길이 그것이다. 나머지 다수는 영화나 아니면 가상현실에서의 게임을 통해 간접적으로 충족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외의 경로는 폭력서클 또는 조직범죄 활동에 가입하는 것인데 이는 명백히 불법이고 비윤리적이다.
IS는 이런 전사의 꿈에 대한 환상을 현실로 바꾸어 놓았다. IS는 전투에 참여하고 자신의 영웅적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눈앞에 던져준다. 참여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겁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슬람 극단주의는 전사의 꿈을 따르는 이들에게 싸워야 하는 정당한 명분을 부여한다. 이런 점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는 목표가 아니라 전사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미국 범죄학자 마크 햄은 1995년 오클라호마 폭탄테러의 공모자를 연구하면서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테러범은 어릴 적 가졌던 전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특수부대의 엘리트 전사가 되고자 했으며 이런 꿈이 좌절되었을 때 경찰과 교도관이 되고자 했고 종국에는 극우주의 테러조직에 가담했다. IS가 SNS를 통해 해외 청소년들을 직접 소통하면서 테러 지원자 모집에 상당한 효과를 냈다는 사실은 전사의 꿈이 좌절된 청소년에게 IS가 얼마나 매력적인 대안이 되는지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이다. 현대사회가 애써 부인하려고 하지만 전사의 꿈은 세계의 대다수 청소년들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목표이다.
다음은 대안적 공동체를 찾는 유형이다. 미국 유럽 등에 사는 이민자 2, 3세대들은 완전한 소속감을 느낄 공동체가 없다는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자신들이 태어나고 살아가게 될 현지 국가에서는 완전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떠나온 파키스탄 알제리 리비아 시리아 그리고 한국 같은 먼 나라에 대해 소속감을 가질 수도 없다. 이슬람 극단주의는 세계화가 만들어낸 이런 이민자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적 공동체를 제시한다. 이슬람 극단주의는 국가와 인종의 차이를 전면 부정하며 인간은 하나의 이슬람 공동체에 속한다고 가르친다. 때문에 본질적으로 범세계적이다. 부모의 나라와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 사이에서 어느 곳에도 귀속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이슬람 공동체는 탈출구처럼 여겨진다. 이민자가 아니더라도 고도로 도시화된 후기산업사회의 청소년들에게 이슬람 공동체는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오늘날 개인은 국가로부터도 직장으로부터도 또 가족이나 지역 공동체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다. 사회보장은 한계에 봉착했으며 직장은 일시적이며 가족과는 소통이 단절되었다. 개인은 홀로 생존해야 한다. 이 같은 개인주의 사회의 스트레스는 전근대적인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비록 폭력적이지만 이슬람 공동체는 자신이 귀속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적 공동체이다.
또 다른 유형은 돈과 모험, 사회적 지위, 매력적인 이성과 같은 인간적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IS에 가담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인간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목표이다. 지난 100여 년 간의 근대화와 산업화, 세계화는 이러한 문화적인 열망을 세계의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 보편적인 삶의 목표로 확산시키고 정착시켜왔다. 대체로 이러한 것들은 교육과 직업, 사회활동 등을 통해 합법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목표를 이룰 수 있는 합법적 통로가 점점 축소되어 왔다.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실업문제와 빈곤은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세계적인 문제이다. 숨 막힐 듯 꽉 짜인 현대 도시사회는 모험의 기회를 차단했으며 사회적 지위 획득의 가능성을 급격히 축소시켰다. 빈곤과 사회적 지위, 사회관계망의 단절 등의 문제가 중첩되면서 매력적인 이성과의 교제 같은 기본적 욕구도 청소년들이 성취할 수 없는 판타지가 된다. IS가 제공한다고 선전하는 것들은 이러한 인간적인 욕망을 일깨우는 하나의 대안적 선택이다. 매력적인 여성들의 사진과 그들과의 혼인보장, 전사로서의 지위와 신분, 높은 임금과 기타 금전적 보상, 모험 등이 많은 청소년들이 IS에 유혹되는 주요한 미끼들이다.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범죄나 테러는 아노미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아노미는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문화적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합법적 수단이 결여될 때 나타난다. 청소년 비행과 폭력, 조직범죄, 보이스피싱, 해적행위 등과 마찬가지로 테러 역시 아노미를 돌파하려는 대안이다.
▦전사의 꿈 추구 ▦대안적 공동체 모색 ▦인간적 욕망 실현이 차단된 현실에서 IS가 제시하는 대안은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 길처럼 보인다. 적어도 IS로 향하는 세계의 청소년들은 그렇게 믿는다. IS의 인력채용이 지금까지 매우 성공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러한 청소년들의 열망에 부응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트렌드가 된듯한 우려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사방으로 열린 사이버 공간을 타고 이러한 트렌드는 세계의 청소년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윤민우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부교수
오늘부터 4주에 한번씩 화요일에 게재될 새 기획 ‘테러로 읽는 세계’는 윤민우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부교수가 집필합니다. 윤 교수는 미국 샘휴스턴 주립대에서 범죄학 박사(2006년) 학위를 받고 미국 휠링 제수이트 조교수(2006년) 등을 역임했습니다. 미국 폭력집단연구소(ISVG) 수석연구원(2004~2006년)과 유엔 마약범죄국 테러예방분과(TPB) 전문가그룹멤버(2011, 2012년)로 활동했습니다. 테러 국제범죄 등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 중이며 SSCI급 학술논문 11편을 포함해 약 60편의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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