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출력 엔진·선루프·후미 스포일러
사브가 자동차 접목 선구적 역할
ABS는 벤츠가 성공적으로 적용
전자기술 결합한 HUD 장치
계기판 정보를 앞유리에 표시
이젠 웬만한 신차에 모두 채용

BMW의 엠블럼 중앙에는 프로펠러 모양의 4등분된 원이 자리잡고 있다. 세계 1차 대전 전까지 전투기 엔진 제작사로 이름을 날렸고, 이후 만든 자동차도 명차 반열에 올린 BMW 역사의 상징이다.
국내에선 철수했지만 해외에선 여전히 인기 브랜드인 일본의 스바루도 2차 대전 당시 일본 군용기를 만들던 회사였다. 여러 항공기 기술을 자동차에 최초로 접목한 사브도 1937년 스웨덴 항공기 업체로 시작했다. 그 만큼 항공기와 자동차는 밀접한 관계다. 지금도 하늘의 앞선 기술은 끊임없이 지상으로 내려와 빛을 발하고 있다.
항공기의 선물, 터보 엔진과 ABS
연소 효율은 높이고 배기가스는 줄여 자동차 업계에서 대세로 자리잡은 터보 엔진이나 버스를 비롯해 거의 모든 차에 적용되고 있는 브레이크 잠김 방지 장치(ABS)도 항공기에서 자동차로 옮겨온 대표적인 기술들이다.
24일 대한항공 기술연구원에 따르면 터보 엔진은 배기가스를 터빈으로 회수해 이용하는 ‘터보 과급기’가 달린 엔진이다. 항공기용 터보 엔진은 무려 110년 전인 1905년 개발됐다. 공기밀도가 희박한 높은 고도에서 날아야 하는 항공기에는 필수적으로 터보 엔진이 장착됐다.
터보 엔진을 처음 지상으로 끌어내린 것은 사브다. 1947년 6월10일 세계 최초로 공개된 사브의 터보 엔진을 적용한 양산차는 다른 업체들의 터보 엔진 개발 경쟁을 불렀다.
사브는 터보 엔진 이외에도 전투기 비상탈출장치에서 영감을 얻은 세계 최초의 선루프, 공기역학을 응용한 자동차 후미의 스포일러 등 자동차에 항공기 기술을 이식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처음에 기차용으로 개발된 ABS는 1940년대 안전한 착륙을 위한 항공기용으로 발전했다. 비나 눈이 내린 활주로에서 브레이크가 한번에 잠기면 항공기가 미끄러져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여러 번 끊어서 브레이크를 잡는 게 ABS다. 제동거리를 줄이는 것보다는 조향 기능을 유지하는 게 목적이다.
항공기용 ABS를 자동차에 처음 도입한 업체는 미국의 포드로 알려졌지만 성공적으로 양산차에 적용한 곳은 메르세데스-벤츠였다. 1978년 S클래스에 부착된 ABS는 독일의 자동차 부품기업 보쉬가 함께 개발했다.
제멋대로였던 자동차의 외형도 항공기의 공기역학이 접목되며 유선형으로 다듬어졌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은 업체들은 연비를 높이기 위해 앞다퉈 공기역학 이론을 끌어왔다. 차 바닥 공기 흐름을 원활하게 해 성능을 높이는 ‘에어 언더테이크’ 디자인도 공기역학을 활용한 사례 중 하나다.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부터 첨단소재까지
초창기 항공기는 사람의 힘으로 강철 케이블이나 도르래를 움직여서 제어해야 했다. 이보다 개선된 게 유압식이었고, 전선이 사용되며 ‘플라이 바이 와이어’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여기에 컴퓨터(PC)가 결합되면서 항공기는 하늘을 나는 거대한 전자기기로 거듭났다.
항공기 발전과 비슷한 길을 걸어 온 자동차가 요즘 항공기에서 전수받은 전기전자 기술로는 HUD가 꼽힌다. HUD는 계기판의 중요한 비행정보들을 조종사의 눈높이에 맞게 앞 유리에 표시해 주는 장치다. 이착륙 시는 물론, 공중전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 고개를 숙여 계기판을 볼 필요 없이 비행에만 집중하도록 한 것이다. 초기에는 진공관과 반사경 등을 이용한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위성항법장치(GPS)와 연동되는 첨단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2000년대 초 수입차들의 최고급 모델에 주로 적용되기 시작했던 HUD는 현재 값이 나가는 신차에는 거의 채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항공기의 첨단소재가 자동차 업체들을 홀리고 있다. 1930년대부터 항공기 외피로 사용된 알루미늄은 비중이 철의 3분의 1에 불과해 차량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연비 향상을 위해 각 업체들은 알루미늄 사용 비율을 높여가고 있다. 심지어 재규어는 플래그십 세단 XJ와 스포츠카 F-타입, 랜드로버는 레인지로버와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차체를 100% 알루미늄으로 제작한다. 조립도 용접이 아닌 항공기에 적용되는 리벳 본딩 방식을 사용한다.
항공기의 전유물이었던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은 이제 차세대 자동차 소재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무게는 강철의 4분의 1이지만 강도는 10배나 강한 CFRP는 무게를 줄여야 하는 항공기 소재로는 그만이다. ‘꿈의 여객기’라 불리는 B787은 기체의 약 50%가 CFRP로 제작됐다.
땅에서 레이싱카에 먼저 사용된 CFRP는 점차 양산차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기아자동차가 지난해 내놓은 올 뉴 쏘렌토는 CFRP 파노라마 선루프가 세계 최초로 적용된 양산차다. 가격이 2억원이나 하는 BMW i8도 탑승공간이 CFRP로 제작됐다. 업계에선 조만간 100% CFRP로 제작된 신차 출시도 예상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자동차는 항공기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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