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예년보다 심해질 것" 예보
남미·인도·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실질 GDP 감소 등 큰 타격 입을 듯
1분기 美 GDP 쇼크도 한파가 원인
Fed의 금리인상 석달 지연시켜
기상이변이 세계경제 최대 변수로
올해 예년보다 심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엘니뇨’ 현상으로 하반기 세계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남미, 인도, 인도네시아 등 주력 신흥국 경제에 연쇄 충격이 예상되면서 미국의 금리인상 등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하는 신흥국들에겐 ‘설상가상’의 상황이 되고 있다.
24일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미국, 호주, 영국 등 선진국 기상청은 최근 “올 하반기에 엘니뇨의 위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일제히 예보했다. 최근 관측된 엘니뇨 감시구역(북위 5~남위 5도, 서경 120~170도)의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섭씨 1.0도 높았는데, 이는 엘니뇨 판정 기준인 0.5도를 훨씬 넘어선 것이다.
특히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18일 발표한 경보를 통해 “엘니뇨는 현재 진행 중”이라며 “올해 여름 북반구에 엘니뇨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90%, 올해 내내 지속될 가능성이 80%”라고 내다봤다.
통상 엘니뇨가 발생하지 않는 평년에는 페루 지역 해안에 고기압, 호주 쪽에 저기압이 형성돼 태평양의 동부에서 서부로 공기의 흐름(무역풍)이 생긴다. 그러나 엘니뇨가 발생하면 이 무역풍이 약해지고 기류ㆍ해류의 움직임이 교란돼 기상 이변이 일어나는 것이다.
엘니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국가는 대양 연안에 위치한 신흥국들이다. 인도의 경우 강우량이 많은 몬순기(6~9월)가 엘니뇨 발생시기와 겹치는데, 엘니뇨 때문에 비가 적게 오고 가뭄이 심해져 각종 농작물 생산이 감소한다. 엘니뇨의 영향으로 거대 식량 수출입국인 인도에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급등 탓에 일반 물가까지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면, 현재 인도 정부가 시행중인 통화완화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인도네시아도 엘니뇨 피해국으로 분류된다. 가뭄이 발생해 쌀, 옥수수, 커피 등 농작물 생산이 급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주는 동ㆍ북부의 강우량 감소, 남부의 고온 형상으로 인해 밀 수출이 줄어든다. 이 밖에 페루는 해수면 온도 상승에 따른 어획량 감소로 수산업 생산이 저조해지고, 칠레 에콰도르 콜롬비아 볼리비아는 가뭄 때문에 농산물 생산에 큰 타격을 입는다.
기상 이변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선진ㆍ신흥국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달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미국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0.2%ㆍ연간 환산)은 전분기(2.2%)에 비해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겨울 미국을 강타한 한파에 따른 생산 차질 및 소비심리 냉각을 ‘GDP 쇼크’의 첫 이유로 들고 있다. 1분기 미국의 성장률이 저조해지면서 미국 통화당국(연방준비제도ㆍFed)이 조기에 금리를 인상하려는 계획도 사실상 무산됐는데, 시장에선 “기상 이변이 Fed의 금리인상을 최소 3개월 이상 지연시킨 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엘니뇨의 경제적 파장은 단지 수출입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979~2013년 사이 엘니뇨가 전세계 21개국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엘니뇨로 인해 실질 GDP가 가장 많이 감소하는 나라는 인도네시아(연평균 -0.35%)로 나타났다. 칠레(-0.19%), 뉴질랜드(-0.16%), 아르헨티나(-0.08%), 페루(-0.07%)도 엘니뇨 피해국으로 분류됐다.
엘니뇨는 또 열대지역 개발도상국의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키고 기근과 전염병을 창궐하게 하는 주범으로도 지목된다. 2011년 네이처지(誌)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1950~2004년 발생한 사회 불안 관련 사건의 21%가 엘니뇨의 직간접 영향을 받았다.
하반기 세계경제에 각종 불안 요인이 잠재하는 가운데, 엘니뇨에 따른 기상 이변까지 발생하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수 있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미국의 금리인상, 그리스 사태, 중국 경기둔화 등 대형 악재가 많은 상황에서 엘니뇨까지 오면 신흥국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엘니뇨에 따른 농작물 생산 감소 및 애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비해 선제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엘니뇨는
동태평양의 적도상 해수면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 이 지역의 정상적 해수ㆍ공기 흐름을 왜곡시켜 세계 곳곳에 가뭄, 홍수, 고온, 저온 등 기상 이변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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