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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에서 천민까지, 사찰에 쌓아 올린 기원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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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에서 천민까지, 사찰에 쌓아 올린 기원의 흔적들

입력
2015.05.2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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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에서 천민까지, 사찰에 쌓아 올린 기원의 흔적들

“자선대부 장작원사 안세한은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중략) 최고의 황금으로 방대한 화엄경(華嚴經) 한 부를 손으로 썼으니, 모두 81권입니다. 불법(佛法)에 기대 장수를 하늘에 기원합니다. 집안과 나라가 모두 안녕하고 사람과 신 모두를 경사스럽게 해 주소서.”

고려 충숙왕 때인 1334년 원나라의 고위 관직에 오른 친원파 고려인 안세한은 검은 종이에 최고급 황금인 자마금(紫磨金)으로 화엄경을 베껴 썼다. 서문에는 부모와 원나라 황실에 감사하며 자신의 장수와 국가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불교 국가였던 고려에서는 왕부터 천민까지 경전을 펴내거나 불교용품을 후원하는 것으로 덕을 쌓아 살아서는 복을 누리고 죽어서는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석가탄신일(25일)을 맞아 열리는 특별전 ‘발원, 간절한 바람을 담다’는 안세한의 경전을 비롯해 다양한 불교유물과 거기에 담긴 기록들을 함께 소개하는 전시다. 539년 고구려에서 승려 40명이 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한국 최고(最古)의 금동부처상부터 1878년 한 평민 부부가 득남을 기원하며 바친 불화까지 총 431점의 유물이 전시됐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1333년 제작된 아미타삼존불상이다. 세 개의 금동불상을 제작하는 데 참여한 발원자만 250명이 넘는다. 불상 안에 넣는 복장물(腹藏物)로 검은색?푸른색?붉은색의 옷감 조각과 불교 경전 외에 불상 조성에 기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발원문이 포함돼 있다. 발원문에는 최연, 김승원, 조지경 같은 귀족으로 추정되는 성씨 있는 이름과 함께 삼룡, 가물이, 만덕 같은 평민들의 이름도 볼 수 있다. 관료와 천민이 함께 불상을 모시면서 기원을 모은 것이다.

반면 유교 국가 조선에서 불교 후원자의 주류는 서민이었다. 승려가 다수의 서민들을 모으는 방식으로 불교용품이 조성됐다. 전남 순천시 매곡동 삼층석탑 안에서 나온 아미타삼존불과 불감(佛龕ㆍ사원 모형의 작은 상자)에는 승려와 시주자 277명의 이름이 적힌 발원문이 들어있었다. 물론 조선 왕실에서도 여성들이 비공식적으로 불교를 후원했다. 조선 순조의 세 공주가 자신의 작위 대신 ‘경오생 이씨’‘무인생 이씨’‘임오생 이씨’로 생년과 이름을 밝혀 발원한 불화가 특히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에는 1670년에 만들어진 울진 불영사 소장 ‘불연(佛輦ㆍ부처를 모시는 가마)’도 전시돼 있다. 이 가마는 지금도 절의 석가탄신일 의식에 사용된다. 삼국시대에 세운 석탑과 고려시대에 만든 불상, 조선시대에 그린 불화가 공존하는 절에는 다양한 계층 출신의 불교 후원자들이 남긴 기원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시 8월 2일까지다. (02)2077-9000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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