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장관회의 불구 첩첩산중
한일관계의 ‘투 트랙’ 성향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내달 국교정상화 50주년을 앞두고 경제협력이 가속화하고 있지만 과거사 문제로 인한 갈등의 골은 여전하다. 협력의 추동력이 균열을 메울지, 서로 버티고 윽박지르다 상황이 더 악화될지 주목된다.
한일 양국이 23일 열린 재무장관회의에서 강조한 키워드는 ‘정경분리’다. 발목을 잡는 정치는 떼어놓고 경제분야의 협력에 치중하자는 것이다. 경색된 양국관계에 휘둘려 이번 회담이 2년6개월 만에 열린 탓이다. 한일 통상장관회담(23일), 한중일 관광장관회담(지난달 11일) 등 최근 들어 비정치분야의 협력이 부쩍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정경분리는 한일관계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표현이다. 경제협력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정치분야의 관계개선을 사실상 포기한 정황이 어린다. 한일관계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위안부 문제 논의가 성과 없이 헛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일관계를 ‘정상(頂上)회담 없는 정상(正常)화’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자조 섞인 탄식인 셈이다.
그렇다고 한일 어느 쪽이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일본은 지난달 아베 신조 총리의 방미를 계기로 미일관계를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다 보니 한국을 상대로 아쉬울 게 없다는 듯 과거사 인식에서도 고압적이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반성과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한 관계개선은 어림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위안부 문제 해결에 ‘올인’하고 있어 먼저 방향을 틀기에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다.
때문에 정부는 8월 아베 총리의 새 담화 발표에 모든 촉각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퇴행적인 미 의회 연설을 감안할 때 전망은 밝지 않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24일 “한일 양국 정상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회의적”이라며 “정경분리를 앞세워 한일관계의 돌파구를 열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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