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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멍첨지

입력
2015.05.2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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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속담이 있다. ‘첨지(僉知)’는 조선 시대 중추부의 정3품 벼슬이다. 돈으로 관직을 사고 팔면서 수많은 자리가 생겨나는 세태를 민초들이 꼬집은, 해학 넘치는 속담이다. 썩을 대로 썩은 당시 사회상을 해학적으로 드러낸다. ‘거품 관직’이 늘어 벼슬 값어치가 얼마나 떨어졌던지, 나중에는 나이든 사람은 아무나 첨지라는 부르는 언어습관이 생겼다. 이름만 있지 실제 자리는 없는 그런 관직을 ‘김첨지 감투’라고 부르기도 했다.

▦ 중국에서도 관직을 사고 판 것은 오래 전부터였다. 한(漢)나라 말기 황제였던 영제는 궁중에 공식적으로 관직 거래소를 설치하고 관직을 팔았다고 한다. 시장원리에 따라 돈을 많이 긁어 모을 수 있는 관직은 경쟁이 치열했다. 높은 관직이나 중앙 관직보다는 지방 관직이 비싸게 팔렸다. 감투 가격이 오르며 외상 판매까지 허용됐다. 외상으로 관직을 사들인 뒤 백성을 수탈해 돈을 모아 갚았다. 관직의 임기도 줄여 회전율을 높였다. 그래서 그 시대를 ‘동취(銅臭)시대’라고 불렀다.

▦ 관직 시장의 발달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경제학자 이정전은 저서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 에서 “한나라는 관직 시장 발달로 관료의 극심한 가렴주구를 낳았고, 그것이 황건적의 난을 초래한 직접적 원인이었다”며 “매관매직과 금권정치로 망한 나라가 한나라뿐만이 아니다”고 밝혔다. 관직 매매는 능력이 있는 인재들의 등용을 막고, 무능하고 부패한 무리를 권력 핵심부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의 진술은 지금도 ‘관직 시장’이 온존해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과거 한나라당 시절 수억 원의 공천헌금이 일상적으로 오갔다고 언급해 여당을 당혹스럽게 했다. 당시 16대 총선 국회의원 공천헌금은 최소 20억 원, 광역의원은 최소 1억 원에 이르렀다고 볼 만한 직접적 언급도 있었다. 멍첨지가 이리 많았던 셈이니, 국회나 지방의회가 국민에게 무능하고도 부정하게 비쳐진 건 아닐까.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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