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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구례 땅도 살 수 있는 건 서울놈들뿐이네"

입력
2015.05.2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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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희망자들 설레는 맘에 덜컥 물어버리는 경우 많아… 주변 농지값 2배로 껑충

"농사도 안짓는 도시 놈덜이 왜 논밭을 꿰차고 있냔 말이여" 말씀에 기운 빠져

땅 속에 숨은 뿌리 열매는 못 생긴 걸로 유명하지만 흙을 뚫고 올라온 감자 꽃은 예쁘기 그지없다.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감자 꽃을 머리와 가슴 장식으로 사용해 감자의 유럽 전파를 촉진시켰다는 얘기도 있다.
땅 속에 숨은 뿌리 열매는 못 생긴 걸로 유명하지만 흙을 뚫고 올라온 감자 꽃은 예쁘기 그지없다.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감자 꽃을 머리와 가슴 장식으로 사용해 감자의 유럽 전파를 촉진시켰다는 얘기도 있다.

“라솔솔미, 라솔솔미.” 요즘 아침은 저 새소리가 꽤나 울린다. 결혼 전에 아내가 산에서 새 울음소리를 듣고는 “저게 뭐라는 줄 알아? ‘홀딱벗고’라고 하는거야.” ‘말하던 그 새다. 아내 귀에 그렇게 들린다는 줄 알고 변태성향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얘기란다.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이름보다 그 얘기가 먼저 생각난다.

사람들도 참 이상하다. 하필이면 왜 그렇게 들렸을까. 알고 보니 욕심이나 어리석음을 벗어버리라는 뜻이라는데 그것도 왠지 갖다 붙인 것 같다. 스님한테는 “빡빡깎고”로 들린다고 하고, 누구한테는 “왈왈왈왈” 소리로 들려 ‘개새’라고도 불렸단다. 나한테는 “작작먹고”에 가깝게 들리긴 한다.

농막을 정리하고 있는데 창문 바로 앞에서 “휘~ 휘~” 사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다보니 지척에 노란 꾀꼬리 두 마리가 뽀뽀를 하고 난리를 피우며 애정행각을 진행 중이었다. 방충망에 가려서 내가 안 보이는지 제법 몰두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짝짓기 철이구나’ 생각하며 관음증세가 발동하는데 라디오에서 DJ의 멘트가 울린다. “오늘은 부부의 날입니다. 퇴근들 하시면 아내 분한테 모처럼 진한 애정표현도 좀 하시고...” 사람이나 동물이나 바이오리듬이 비슷한가 보다.

“일 안하고 뭐 허신가요” D동생이 들어왔다. “사방에서 아주 난리다 야. 넌 짝짓기 안하고 뭐 하냐. 낼 모레면 마흔인데.” ‘짝’이라는 말만 들어도 좋은지 씨익 웃는다. “열심히 쟁여놓고 있지라.” 뭘 쌓아놓고 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돈이 아닌 건 분명하다. ‘용불용설’이 떠올랐지만 말은 안 했다. “형님, 그건 그렇고 땅 계약에 대해 좀 아시는 가요?” “너 땅 사려구?” “지가 돈이 어딨당가요.”

동생의 얘기는 이랬다. 아는 사람이 귀농하려고 구례에 땅을 알아봤는데 터무니 없는 가격에 매매계약을 했단다. 동생이 알아보니 햇볕도 잘 안 들고 모양도 반듯하지 않아서 좋다고 할 수 없는 논이었다. 그런 땅을 시세보다 두 배는 더 비싼 값에 구입하기로 한 거다. 계약서에 도장은 찍었지만 아직 계약금을 주지는 않았다는데 계약금도 매매금액의 20퍼센트나 주기로 했다고 한다.

의견을 얘기해줬다. 아직 계약금을 주지 않았다지만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었으니 위약금은 물어야 한다. 현지 사람인 동생이 땅 주인을 찾아가 사정을 해보는 수 밖에 없다. 계약금도 너무 많이 걸었으니 그거라도 조정하고 깎을 수 있는 대로 깎아 보자. 돈도 받지 않고 계약서부터 쓴 걸 보면 땅 임자도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동생도 동의했다.

귀농 희망자들이 땅을 산다는 설렘에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계약을 하는 예가 많다. 흔한 말로 ‘눈탱이 맞는다’고 하는 경우다. 대개는 퇴직금에 집까지 팔고 나니 뒷주머니가 두둑하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격에 널찍한 ‘내 땅’을 가질 수 있다는 설렘에 마냥 들뜨는 것도 당연하다. 그럴 때 현지인 중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적정시세도 확인하고, 그 땅의 내력이나 성질까지 알아보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운이 따르는 사람은 몇 없다.

대부분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매물이 있으면 위성사진으로 슬쩍 내려다보고, 한적한 곳인데다 근처에 계곡이라도 있으면 낙점을 한다. 그리고 일단 현장에 가보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대강 똑같아 보이는 땅도 하루 만에 눈이 다 녹는 곳과 겨우내 얼어있는 곳이 따로 있고, 같은 필지 내에도 뽀송뽀송한 데가 있고 물구덩이처럼 내내 젖어있는 곳이 있다. 하루 발 품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지리산 근처를 선망하던 사람들은 산 둘레로 구례, 하동, 산청, 함양, 남원을 몇 바퀴씩 돌다가 웬만한 경사에 물도 흐르고 전망이 좋다 싶으면 “그래! 내가 여기 와서 살려고 그 고생을 했구나” 하고는 덜컥 물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서울보다 ‘0’이 두 개쯤은 빠지는 땅값에 맑은 공기 맡으며 살 수 있는 팔자 가진 놈이 몇이나 되겠냐며 스스로 ‘쓰담쓰담’하고는 그림 같은 집 지을 생각으로 이어진다. 평균 경사 율이 15퍼센트 이상이면 농사짓기 힘들다는 ‘한계농지’로 구분되는데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

혹시 누가 들으면 귀농한 놈이라 도시사람 걱정하는 줄 오해할까 봐 얘기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무모하고 무식한 행동 때문에 원래 살던 사람들, 농사짓는 사람들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생각 없이 구입하는 가격은 그 주변 농지와 택지의 기준 가격이 돼버린다. “아무개 네가 천변에 있는 논을 평당 10만원에 팔았대” 소리가 돌면 근처에서는 그 가격이 최저가로 굳어진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아무개 하우스 뒤에 집 짓는다고 밭을 20만원씩에 샀댜. 그거 재작년에 8만원에 내놨던 땅인디” 하면 밭은 물론이고 대지는 그 곱으로 뛰게 마련이다.

얼마 전에도 콩밭을 넓혀보려고 옆 땅 주인과 거래를 진행하던 한샌(한씨)이 옆 마을 거래가를 듣고 서둘러 사려했지만 똑같은 소문을 들은 주인 김샌이 올려 붙인 가격에 싸움만 일어났다. 갑자기 두 배로 뛴 땅값은 한샌에게 ‘넘사벽’이었고 “한 동네 살면서 이럴 수 있능겨!”라는 소용없는 말 밖에 할 게 없었다. 장담하건대, 한샌은 앞으로도 그 땅을 살 수 없고 김샌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에 사는 큰아들에게 땅을 넘길게 분명하다. 결국 현지 주민이 살 수 없는 땅이 되는 수순이다.

구식 농가에 사는 장씨아저씨도 집을 다시 지을 겸해서 터를 알아봤지만 이미 예상을 벗어난 시세에 구입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있던 집 자리에 조그맣게 다시 짓기로 하셨다. 한탄조로 “이제 구례 땅 살 수 있는 건 서울 놈들 뿐이네” 하시던 아저씨 말씀이 한때 서울 놈이었던 시골 놈 귀에 적잖이 서글프게 들렸다.

동생이 돌아간 뒤에 예초기를 챙겨 논으로 향했다. 작년 가을에 녹비작물(이듬해 거름이 되라고 뿌리는 풀)작물로 뿌렸던 호밀이 키만큼 자라서 모내기 전에 베어줘야 했다. 그냥 밑둥을 자르면 길이가 길어서 나중에 트랙터로 논을 갈 때 뒷날에 감기기 때문에 중간을 베고 다시 밑둥을 쳐줘야 한다. 하루면 다 하겠다 싶던 일이 사흘째다. 맘 단단히 먹고 마스크를 쓰는데 수로 관리하는 아저씨가 내 옆에 오토바이를 세운다. “오랜만이구만. 바뻐지겄네” 항상 웃으신다. 3년 전 가뭄에 이 지역 물 조절하느라 힘드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 잘 지내셨어요? 이제 자주 뵙겠네요” 추수 이후에 논에 자주 올 일이 없으니 거의 반 년 만에 뵙는 셈이다. “이거 얼마에 샀다구 했지?” 갑자기 논 값을 물어 보셨다. “3년 전에 5만5천원인가 줬어요. 저 아래 친구는 그 두 해 전에 3만 5천원에 샀다는데요.” 또 웃으신다. “잘 사신겨. 지금 이 근처 죄다 8만원 넘어. 얼마 전에 저 초등학교 앞 논도 8만5천원에 팔렸대. 돈 벌었네. 애쓰셔~”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사라지신다.

저마다의 꽃이 매력을 발산하는 계절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감자꽃, 어성초꽃, 감꽃, 양파꽃망울.
저마다의 꽃이 매력을 발산하는 계절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감자꽃, 어성초꽃, 감꽃, 양파꽃망울.

풀 벨 때 흐르는 땀은 닦아내기도 사납다. 예초기를 세우고, 보호구 모자 안경을 차례로 벗어야 수건을 댈 수 있다. 다 벗었다고 생각하고는 안경을 쓴 채로 얼굴을 닦다가 혼자 궁시렁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논바닥에 주저 앉았다. 살펴보는 논과 일하는 논의 면적은 체감상 10배는 차이 난다. ‘이러다 쓰러지면 누가 발견이나 해서 살기나 할라나’ 생각하던 중 수로관리 아저씨의 “돈 벌었네” 말씀이 맴돌았다. ‘돈 벌었다고? 땅은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매기는 가격이 오르면 돈 번 건가? 팔게 되면 살 때보다 더 받긴 하겠지. 하지만 농사짓는 사람이 땅을 파는 건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인데 그럴 때 받는 돈이 번 돈이 될까? 난 논이 더 필요한데 사려면 이제 더 힘들어졌다는 얘기 밖에 더 되나?’ 쉬면서도 기운이 빠졌다. 장씨아저씨 말씀이 생각났다. “농사두 안 짓는 놈덜이 논밭을 왜 꿰차고 있냔 말이여. 누가 공약으로다가 농지개혁 들고 나오면 내 죽은 이승만이 나온대도 찍을라네. 세상 없어도 그건 꼭 해야 되는거여.”

논 일을 마치고 농장으로 돌아왔다. 밭을 둘러보니 마늘 쫑도 길게 늘어지고 감자 꽃이 키재기를 하고 있다. 감자 꽃은 프랑스 왕비였던 마리 앙트와네트가 장식으로 썼다고 할 만큼 유명하다. 못생긴 뿌리열매와는 사뭇 다르다. 주위를 한번 살피고 마리처럼 꽃을 꺾어 머리에 꽂아 봤지만 도저히 숱이 모자라 실패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웃통 다 벗고 일하던 윗집 총각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도 놀랐지만 그 친구도 적잖이 놀랐나 보다. 멍한 표정에 대고 그냥 웃어줬다.

마늘밭에서 꽃대에 해당하는 마늘쫑을 끊어낸다. 동물로 치자면 생식기에 해당하기에 거세를 하는 느낌이 들어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마늘밭에서 꽃대에 해당하는 마늘쫑을 끊어낸다. 동물로 치자면 생식기에 해당하기에 거세를 하는 느낌이 들어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마늘이나 감자나 둘 다 뿌리작물인지라 위에 맺는 꽃이 수확에 방해가 된다고 잘라준다. 후대를 위해 애쓰는 생명의 생식기를 자르는 것이니 동물로 말하면 거세하는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미안하다. 서양에서는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는데 식물복지라는 말은 말이 안될까. 같은 생명이고, 태어나서 가급적 본연의 생태대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게 의미가 있다면 말이다. 하긴 미소를 지을 정도로 행복하게 잘 키운 동물을 결국 좋은 먹거리라고 쓱싹 잡아 먹는 거 보면, 동식물에 복지 어쩌구 하는 게 너무 인간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람 복지도 제대로 건사 못해서 맨날 쌈박질 하는 중계방송을 보구 사는데 뭐.

예초기 탓인지 허리도 아프고 팔꿈치도 쑤셔서 농막으로 내려와 물을 끓이면서 라디오를 틀었다. 읽던 소설책을 펼치는데 불법자금을 받은 정치인을 기소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얼마 안 되겠지만 내가 낸 세금으로 그 정치인 마누라 비자금 채워주고 그 자식 유학 보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뻔뻔스럽게 “내가 받은 돈이니 내 돈 아니냐”고 눈 동그랗게 뜨던 화면이 떠올랐다. ‘받아먹은 돈으로 여기저기 사 놓은 땅은 또 얼마나 되려나.’ 주파수를 돌려 버렸다.

자연사박물관 관장이라는 사람이 나와 인터뷰 중이었다. “관장님은 외계인이 있다고 보시나요?” “당연히 있다고 확신합니다.” 나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장은 이유를 설명했다. “태양과 같은 별이 수 천 억개 모여 은하가 됩니다. 그런 은하 수 천 억개가 모여 우주가 됩니다. 우주가 낭비할 리 없죠. 어디엔가 외계인은 분명히 있습니다.” 설명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혹시 지구가 우주에서 유일하게 낭비되는 곳은 아닐까? 신이 지구에 인간을 들여놓은 것 같은 실수를 다른 곳에서 또 했을까?

라디오를 껐다. 펼쳤던 책을 접고 그냥 좀 쉬고 싶어 눈을 감았다. 슬슬 잠이 오는데 검은등뻐꾸기가 다시 울어댄다.

“작작놀고, 작작놀고” “왈왈왈왈, 왈왈왈왈” 이런 개새들…

前 한국일보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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