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안주하는 게으른 기업
천하장사 소시지밖에 생각 안 나"
반세기 가업 물려받은 박정진 사장
소비자 좌담회서 나온 발언에 충격
제품군 다양화·고급화 박차
수제 맥주회사 카브루 인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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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햄은 과거에 안주하는 게으른 회사 아닌가요? 옛날 간식 ‘천하장사’ 소시지밖에 떠오르는 게 없으니….”
22일 인터뷰 자리에 나온 중견식품기업 진주햄의 박정진(40) 사장은 지난해 소비자 좌담회(FGI)에서 들었던 이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박 사장은“오래된 회사 이미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회사이니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 게 맞다’고까지 하는 소비자가 있어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진주햄의 변신은 이 충격에서 시작됐다.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밀려들어서다. ‘천하장사’의 고급형 제품을 내놓은 데 이어 핫도그, 순대, 김말이 등 이른바‘길거리 음식’을 고급화한 제품들을 내놔 제품군을 다양화했다. 기업이미지(CI)도 새로 바꿨다. 변화는 실적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매출은 1,200억원이다. 1963년 출범한 진주햄은 5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중반까지 연간 매출액이 500억원대에 머물렀다.
박 사장은 “타사의 히트상품을 비슷하게 만든 ‘미투제품’을 당연시 여기는 등 오랜 역사와 인지도에 비해 마케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트렌드가 급변하고 있어 50년 넘게 살아남은 기업도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변신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수제맥주 제조회사 ‘카브루’를 인수했다. 박 사장은 “수제맥주사업에 뛰어든 것은 햄ㆍ소시지와 맥주의 시너지를 기대한 것도 있지만 맥주사업의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가 줄 후광효과에 대한 기대도 컸다”고 덧붙였다.
올해 초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서울사무소 인근에 ‘메뉴개발실’도 만들었다. 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직원들이 자사 제품을 이용한 요리를 만들고 시식회를 여는 공간이다. 유통업체에 새로 제품을 입점시킬 때 물건만 팔고 마는 게 아니라 아예 조리 방식까지 함께 제안하자는 뜻이다. 자사 제품과 경쟁 제품의 맛을 비교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도 이 공간에서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의 선전도 든든한 힘이다.‘따리티엔지앙’(大力天將)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천하장사 소시지가 지난해 7,400만개나 팔렸다. 2011년 3억8,000만원이었던 이 제품의 중국 매출은 지난해 77억원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올해 8월까지 누적 매출액 2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중국인들이 일본산 수입 식품의 안전성을 불신하면서 한국산 식품이 유아용 간식으로 불티나게 팔려 나간 덕이다.
박 사장의 남은 도전은 조직문화를 젊게 바꾸는 일이다. 그는 “아무리 젊어졌다고 외부에 이야기해도 스스로 달라졌다고 믿지 않으면 진짜 변화가 아니다”며 “젊은 직원들의 모임인 ‘진주 영 이노베이터’(가칭)를 결성해 이들을 구심점으로 기업 문화를 바꿔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아버지 박재복 회장이 2010년 작고한 후 2013년 사장으로 취임했다. 2006년부터 경영에 참여해 온 동생 박경진(35) 부사장과 함께 회사를 이끌고 있다. 박 사장은 삼성증권,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등 금융권에서 경력을 쌓고 진주햄에 합류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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