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낯선 도시로 혼자 떠난 적이 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도시에 도착하고서야 내게 아무 계획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달리 할 일이 없었으므로 무작정 걸었다. 천천히 걷다 힘들면 눈에 보이는 커피숍에 들어가 쉬었고, 배가 고프면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밥을 먹었다. 해가 지기 전 숙소에 돌아와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지나간 영화들을 보았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 뒤로 우연히 그 도시의 이름을 들으면 턱없이 다정한 느낌에 휩싸이게 된다. 그곳의 명소도, 맛집도 가 본 적 없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누가 혹시 그곳을 아느냐 물으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내가 정말 하나의 도시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될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사적인 도시’라는 제목을 듣고 가만히 무릎을 쳤다.
‘나의 사적인 도시’는 저자 박상미가 2005년 11월부터 2010년 6월까지 4년 반의 시간 동안 뉴욕에서 써 내려간 블로그의 포스트를 간추리고 재구성해 묶은 산문집이다. 그러니까 한 예술가의 ‘뉴욕 일기’라고 해도 좋고,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지낸 한 시기에 관한 기록이라고 해도 좋다. 왜 하필 뉴욕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런 질문에 저자는 미리 대답한다. ‘누군가에게 용산이 특별하고 누군가에게 베를린이 특별한 것처럼, 나에겐 뉴욕이 특별했다’고. 더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저자 박상미는 미술가이면서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책 ‘빈방의 빛’, 스콧 슈만의 ‘사토리얼리스트’ 등 예술서적과 줌파 라이히, 제임스 설터 등의 소설을 번역해온 것으로 잘 알려진 이름이다. 그가 번역한 줌파 라이히의 ‘그저 좋은 사람’이나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 등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사랑 받는 작품이다. 그가 번역한 소설들을 읽었을 때 나는 그가 문장과 문장이 놓인 맥락을 섬세하게 살피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이를테면 ‘좁게 살기’라는 챕터에서는 널따란 집에서 좁은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느낀 단상이 이렇게 펼쳐진다.
‘사는 방법엔 넓게 사는 방법과 좁게 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피카소는 넓게 살았지만 모란디는 좁게 살았다. 어떤 사람은 주변에 많은 친구들을 두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평생 한두 명의 친구로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하고 살고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만 하고 산다. (중략)어떤 사람들은 큰 집에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좁은 집에 산다. 좁게 살려면 집에 두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22쪽) 좁게 사는 삶은 불편한 삶이 아니라 유용한 것만 취사선택해 곁에 두어야 하는 삶이라는 것, 그러므로 ‘크게’ 보며 사는 삶을 배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도시의 일상에서 깊은 사유의 순간을 포획하고 그것을 담담한 듯 세심한 언어로 오므렸다 확장시켰다 한다.
책 안에는 뉴욕에서만 보고 들을 수 있는 이미지들로 가득하지만 독자에게 남는 느낌은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 아니다. 저자가 발견한 그 가장 사적인 뉴욕의 순간들에는 역설적으로 어느 도시에 사는 독자라도 공감할 수 있는 감정과 태도와 삶에 대한 성찰이 깃들어 있다. ‘모든 사람은 지금 이 순간 너무 기뻐 팔짝팔짝 뛰어야 한다. 누구나 이순간 자신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기에. (중략)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순간, 혐오로 치를 떠는 순간조차 나의 마음은 나만의 것이다.’(254쪽)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멀리 간다는 저자의 믿음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문장이다. 뉴욕이 아니라 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멋진 산문집이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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