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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는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신앙인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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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는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신앙인이 공존한다

입력
2015.05.2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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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피크 케샤브지 지음. 김경곤 옮김

궁리 발행ㆍ428쪽ㆍ1만8,000원

종교학 박사이자 목사인 케샤브지, 비교종교학을 소설 형식 빌려 안내

과학ㆍ신앙ㆍ본능 부딪히는 3일 토론… "자신의 입장만이 진리일 수 없다"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왜 이런 고난이 닥치는가. 꼭 지금이어야 하는가. 왜 하필 나인가. 이런 목마름이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끈다. 하지만 내적 타협에 이를 뿐 완벽한 해갈을 경험하기란 힘겹다. 맹수가 날뛰듯 뛰쳐나오는 질문들을 꾹 눌러야 한다. 물론 이성에 기댈 수도 있다. 하지만 사색의 뭉치들은 단 하나의 질문 탓에 다시 온 존재를 잠식한다. “만약 친구가 3개월밖에 살지 못하게 돼서, 죽은 후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말해 줄 것인가.”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는 일상에서 부딪히는 묵직한 철학 담론을 소설로 풀어낸 책이다. 신앙생활에서 겪는 혼란 탓에 한 왕국의 임금이 궁극의 답을 찾기 위한 ‘신념 토론 대회’를 벌인다는 설정이다. 소설 형식을 빌렸지만 비교종교학 입문서로 봐도 무방할 만큼 짜임새 있는 구성 속에 각 사상 갈래를 소개한다.

종교학 박사인 저자 샤피크 케샤브지 전 제네바대 교수는 케냐에서 출생한 인도인으로 개신교회 목사이자 스위스 로잔시에 위치한 ‘종교대화의 집’ 아르질리에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2005년 백혈병으로 13세 아들 시몽을 떠나 보낸 이래 삶과 죽음의 문제에 천착해왔다.

사회학, 정치학, 신학을 공부한 샤피크 케샤브지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 정신과 물질, 인간과 자연, 부와 가난, 생과 사 등 다양한 철학적 주제를 해학으로 짚어낸다. 궁리 제공
사회학, 정치학, 신학을 공부한 샤피크 케샤브지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 정신과 물질, 인간과 자연, 부와 가난, 생과 사 등 다양한 철학적 주제를 해학으로 짚어낸다. 궁리 제공

이번 책은 ‘세계 종교 올림픽’이라는 제목으로 2008년 국내 번역 출간된 그의 책 ‘임금과 현자와 광대’의 속편이다. 전작이 기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 세계 5대 종교와 무신론 대표 선수의 첨예한 토론이었다면 이번에는 ▦세상을 신이 만들었다고 보는 일신론 ▦자연과 만물은 원래 이렇게 존재했다고 보는 일체론 ▦세상은 물질과 과학적 원리로 구성돼 있다고 보는 유물론의 세 관점을 비교하는데 공을 들였다. 두 권 모두 재독 종교사학자인 김경곤 박사가 옮겼다.

각 사상의 대표발언자로 나선 것은 신앙심 깊은 수학자(일신론), 요가수행자(일체론자), 생물학자(유물론ㆍ무신론자)다. 신앙심 깊은 학자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전통을 망라하며, 수행자는 힌두교, 불교, 그리스사상, 중국사상, 신이교도주의, 뉴에이지를, 생물학자는 과학적 사고를 대변한다. 냉정한 이성의 소유자인 왕비와, 결혼과 신앙생활을 동시에 유지하는 독특한 사제인 수도사, 마음에 드는 여자와는 모두 잠자리에 들고야 마는 탐식가 등 각각 과학, 신앙, 인간의 본능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토론을 경청하는 가운데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진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친구에게 할 조언을 묻는 사회자에게 생물학자는 야무지게 답한다. “죽음은 회피할 수 없는 분해죠. 죽음 후 영혼이 존속할 리 없으며, 화장할 경우 세포들은 열과 재가 되고, 염장할 경우 세포조직은 박테리아의 먹이가 된다고. 그러니 남아 있는 생의 매일 매일을 즐기라고 말할 것입니다.”

한 여성이 흐느끼자 요가수행자가 평화로운 표정으로 입을 연다. “육신 안에 담긴 삶은 일시적입니다. 우리는 수없이 태어나고 죽죠. 병도 살인자도 우리영혼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저는 명상을 통해 침잠해 새 삶을 준비하라고 말하겠어요.”

그리스 출신의 여성 수학자는 차분히 반박한다. “지상에서 생의 계획에 종지부를 찍는 죽음은 슬픔의 근원이지만 영원한 삶을 시작할 때 죽음은 긍정이 됩니다. 저는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게 된다’는 예수님 말씀을 상기시키겠어요.” 조롱과 비난으로 토론회장이 어수선해진다.

저자는 처음부터 궁극의 답이 없는 이 3일간의 난상 토론회를 통해 나와 다른 신념을 지닌 타자가 무엇을 희망하고, 인식하고, 경험하고 있는지를 촘촘하게 드러낸다. 10년 넘는 집필 과정을 통해 신념과 종교에 대해 고민해 온 저자가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제시하는 유일한 답은 “우리가 종교적 인간이건 아니건 간에 존재의 탐구, 죽음과 희망의 문제는 모두와 무관할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의 입장만이 진리 중의 진리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답은 저자가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다는 아들 시몽의 말에 있는 것일까. 각 신념에 대한 설명을 들은 아이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는 무신론자 불가지론자와 신앙인이 모두 함께 존재하는 것 같아요.”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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