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멀리서 볼 때, 사람 같다. 부러 바라보지 않으면 없는 듯하지만, 한순간 고개 돌려 의식하면 조용히 숨 죽여 귀 기울이게 만드는 어떤 음성의 파동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이내 다시 시선을 떼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한반도엔 어딜 가도 산이 많고, 서울에서도 광화문 한복판이거나 변두리 외곽 어느 곳이거나 높고 낮은 산들을 볼 수 있지만, 대개 근처 건물들을 먼저 살피게 되는 삶이라 밀착해서 느끼긴 힘든 편이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멀리 보이는 산이 잘 만나지는 않지만, 한번 깨닫기 시작하면 각별해지는 누군가를 닮아 보이는 이유가.
며칠 전 부산엘 들렀다. 그런데, 오랜만에 바라본 부산의 능선들은 서울과는 짐짓 다른 모양이었다. 서울의 산들이 강퍅하고 뾰족한 느낌이라면 부산의 능선들은 상대적으로 둥글고 깊고 풍성한 형세였다. 지리학적으로 설명할 재간을 없지만, 가시거리에 들어오는 모양만 보자면 서울은 삼각, 부산은 원에 가까웠다. 서울이 고음이라면 부산은 낮고 깊은 저음이랄까. 산을 향해 몸 깊은 곳에서 응어리진 공기 같은 걸 소리 내 뱉어보았다. 산은 답이 없었다. 다만, 곁에 있는 사람의 둥근 마음 같은 게 비눗방울 처럼 다가와 부드럽게 터지는 것 같았다. 산은 묵묵했으나, 나는 오래 닫혀 있던 말문이 터져 뜻 모를 허밍만으로 즐거워지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