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친구의 변신
33명 살해한 게이시 체포 이후
영화·드라마도 분장 속 음모 다뤄
배트맨 악역 '조커'등 속속 나와
현실로 옮겨진 위험
분장에 가려진 익명성 가져
묻지마 폭행 등 프랑스서 유행
미국선 총기 난사 82명 사상
고전 공포 영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 ‘폴터가이스트’(1982)가 리메이크 돼 올 여름 영화팬들의 더위를 날려버릴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어릿광대가 등장, 공포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킬 것이다. 전작에서 광대 인형은 어린 주인공 ‘로비’를 괴롭히고 공격하는 등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이끄는 또다른 주인공이었다.
과거 친근함의 대명사
원래 어릿광대는 익살스럽고 친근한 이미지의 대명사다. 영화와 TV속에 어릿광대가 등장하면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미국의 전설적인 어릿광대 연기자 레드 스켈튼(1913~1997)은 웃음뿐 아니라 삶의 비애까지 담아 어릿광대의 역할을 한 차원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0년대 인기 어린이 TV 프로그램 ‘하우디두디’쇼에 나오는 클라라 벨을 비롯해 TV에 나오는 대부분의 어릿광대는 아이들의 친구였다.
복장은 다르지만 희극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찰리 채플린(1889~1977) 역시 어릿광대를 연상시키는 연기로 관객을 웃기고 울리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1963년 월라드 스캇은 햄버거 업체의 마스코트인 ‘로널드 맥도날드’로 분장, 눈길을 끌었다. 햄버거 산타클로스인 셈이었는데, 그는 맥도널드 햄버거를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만든 어릿광대였다.
공포 영화 속에선 괴물로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어릿광대가 마치 좀비나 뱀파이어처럼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단골괴물 중 하나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상황이 바뀐 것은 1978년 연쇄살인범 존 웨인 게이시가 체포되면서부터다. 무려 33명을 살해한 그는 평소에 광대 분장을 하고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것으로 밝혀져 ‘광대 살인마’라고도 불렸다.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돼서도 1,000점 이상의 유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그가 가장 좋아했던 소재가 광대의 초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 당시 그는 “광대는 살인에서 자유롭다”며 “내 얼굴을 꾸며 날 알아볼 수 없으니 그 누구도 내 살인을 알아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광대 공포증(coulrophobia)이 확산됐다. “분장한 미소 뒤로 그들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는 광대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고담’ ‘다크나이트’ ‘배트맨 리턴’ 등 수 많은 버전을 낳으며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사로 잡은 ‘배트맨’에서는 극악무도한 악당 ‘조커’가 광대 모습으로 등장한다. 특히 다크나이트에서 얼굴에 흰 분을 바르고 귀 밑까지 찢어진 빨간 입을 크게 벌려 웃으며 독가스를 뿌리던 히스 레저의 모습은 관람객들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다.
스티븐 킹 원작의 2009년 미니시리즈 ‘잇(It)’에는 모습을 바꿔가며 어린이를 살해하는 살인자가 나왔다. ‘페니와이즈’란 이름의 살인마는 주로 광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현재 잇 장편 버전이 제작 중이다. 요즘 인기 있는 아동용 공포소설 시리즈 ‘구스범스’ 최신판 제목은 ‘광대가(街)의 악몽(a nightmnare on clown street)’이며 TV 시리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는 올해 초 광대 살인마 ‘트위스티’를 하차시키기도 했다. 폴터가이스트 리메이크를 감독한 길 키넌(39)은 “정서적으로 무섭게 와 닿는 광대를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 어릿광대의 이미지는?
영화와 드라마의 영향으로 현실에서도 ‘광대’가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할로윈을 앞두고 프랑스 곳곳에서 광대 복장을 한 청소년들이 밤에는 물론 대낮에도 폭력을 휘둘러 사회문제가 됐다. 어릿광대들의 묻지마 폭력은 처음에는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지만 점차 남부지역까지 확산됐다. 이들은 광대 분장을 한 뒤 장난감 권총과 칼, 야구방망이를 가지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몽펠리에에서 35세 남성은 광대 차림의 남성들로부터 처참하게 구타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남부 도시 3곳에서도 묻지마 폭행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에 체포된 광대들은 14~16세 청소년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소년은 경찰에서 “내 행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 떠 도는 하나의 유행을 따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기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 호아퀸 밸리 일대에서는 광대 복장의 괴한들이 소동을 부렸다. 해가 지면 출몰하는 이들은 으스스한 광대 차림으로 주민들을 협박하거나 겁을 주고 다녀 관할 경찰서에는 ‘공격적인 광대’에 대한 신고가 수 십 건씩 들어왔다.
지난 2012년 7월에는 미국 콜로라도 주의 한 영화관에서 제임스 홈스가 관람객들에게 총을 난사 12명을 살해하고 70명을 다치게 했다. 당시 홈스는 오렌지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과 복장 등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속 조커를 흉내 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물론 여전히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하는 어릿광대도 있다.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국제 빨간코 어릿광대(Red Nose Clown Doctors International)는 전문 배우와 예술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아픔과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찾아가 웃음을 찾아주고 있다. 1994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오스트리아 빈에 본부를 두고 세계 11개국에서 활동 중이다. 인기만화 심슨 가족에서는 ‘크러스티 더 크라운’이 처량하지만 코믹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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