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총괄 심의 '국가습지심의위'
"안건 없다" 자문기구 산하로 통합
"4대강 눈치보며 심의 꺼려" 반박
내달 국제총회선 심의위 홍보 황당
정부가 국가 습지 정책을 총괄 심의하는 국가습지심의위원회를 자문기구와 통합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4대강 사업을 진행하며 습지 보전을 강화하는 국제적 흐름에 역행해 온 우리 습지 정책이 다시 한 번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습지의 날을 하루 앞둔 21일 환경부에 따르면 정부는 심의 기구인 국가습지심의위원회를 환경부 소속 자문기구인 중앙환경정책위원회와 통합한 뒤 산하 부속위원회로 운영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올해 4월 행정자치부가 운영 실적이 매우 부진하거나 필요성이 사라진 위원회를 줄이기 위해 마련한 ‘행정기관위원회 정비계획’에 따른 것이다.
국가습지심의위원회는 습지 보호를 목표로 한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의 권고와 습지보전법 등에 따라 2007년 출범한 법정 최고 습지정책 심의기구다.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나온 결의문ㆍ권고사항 이행과 습지기본계획 수립 및 변경 등 국내 습지보전정책을 최종 결정한다. 환경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등 습지 관련 부처와 민간 전문가 등 27명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설립 이후 회의가 진행 된 건 2008, 2010, 2011, 2012년 총 4번뿐이고, 그나마 2011, 2012년 회의는 서면 회의였다. 환경부는 “심의할 안건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명호 생태지평연구소 사무처장은 “신규 람사르 습지 지정, 습지보전법 개정 논의 등 국가습지심의위원회가 열릴 필요가 있던 상황이었다”고 반박했다. 국가습지심의위원회에 참여한 복수의 위원들은 “4대강 사업 여파로 정부가 위원회 개최를 꺼려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마지막 대면 회의가 열렸던 2010년은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에 열을 올릴 때였다.
한 심의위원은 “2010년 당시 환경부가 4대강 사업을 합리화하는 습지총량제를 들고 나와 위원회 내부에서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됐었다. 환경부는 이명박 정부 내내 4대강 사업을 옹호했기 때문에 심의위원회를 여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습지총량제는 습지를 개발ㆍ매립할 경우 같은 면적의 인공습지를 만들도록 한 방안이다.
환경시민단체들은 국가 습지정책을 결정하는 ‘심의기구’를 환경부 산하 환경정책 ‘자문기구’ 아래에 두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국내 습지 정책의 후퇴가 우려된다고 반발했다.
중앙환경정책위원회가 1년에 한 번 열리기 때문에 산하의 습지심의위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명호 사무처장은 “국가습지심의위원회의 위상을 자문기구의 분과로 격하시키는 것은 국가 차원의 통합적인 습지정책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다음 달 우루과이에서 열리는 제12차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국가습지심의위원회의 설립ㆍ운영을 주요 성과지표로 제시할 계획인데, 위원회를 사실상 무력화해놓고 외부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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