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9일 오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최종 승인한 뒤 20일 새벽 다시 불허를 통보해 오기까지 채 하루가 안 걸렸다. 수 개월 협의 끝에 이뤄진 유엔 수장의 방북 승인을 이렇게 간단하게 뒤집어 버릴 수 있는지 아연할 따름이다. 북한 변덕이야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이번 일은 한층 충격적이다. 북 핵ㆍ미사일 개발은 유엔안보리 결의 위배사항이라는 반 총장의 발언 때문일 가능성이 높지만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 고조 등 이로 인한 대가가 너무 크다.
▦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개입하지 않고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새삼 김정은의 의사결정과 통치 스타일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이유다. 석연찮은 부분이 없지 않지만 엊그제 국정원이 밝힌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을 비롯해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 처형 등 김정은 체제 들어 진행된 무자비한 숙청도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 국정원 등은 그런 김정은의 성격과 스타일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깊이 알고 있을까.
▦ 1990년대 중반의 문민정부 시절 외교안보 고위직에 있었던 한 인사는 최근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김정일에 대한 연구와 정보가 없어 크게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남북 대결 차원의 이데올로기적 연구만 있었고 팩트에 근거한 실증적 북한 연구가 아직 없던 때였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심리학, 언어학, 정치학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모여 김정일의 연설문과 활동 등을 분석한 종합적 연구결과를 보내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김정은에 대해서 그런 정도의 연구가 어디선가 이뤄지고 있을까. 13년간 김정일 요리사로 일했다는 일본인 후지모도 겐지의 인물평이나 일부 탈북자들의 전언 이상의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탄탄한 연구가 필요하다. 물론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관은 국정원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국정원은 주요인사 처형 등 북한 내 변고 등 국민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것들에만 힘을 쏟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진짜 필요한 정보를 생산해 내는 게 국정원의 역할 아닐까.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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