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대형 은행들이 외환시장 조작 혐의로 미국과 유럽 금융당국에 6조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게 됐다. 이들 은행 직원들의 행태는 수년간 온라인 대화방을 통해 환율 조작을 모의하며 ‘우리는 함께 죽는다’는 다짐까지 하는 등 경쟁자이기 보다는 같은 갱단 조직원을 연상시킨다.
20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유럽의 바클레이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UBS와 미국의 씨티그룹,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미 법무부와 뉴욕, 영국 금융감독당국에 56억달러(약 6조1,000억원)의 벌금을 내게 됐다. 이로써 외환시장 조작 혐의로 은행들에 부과된 누적 벌금은 100억달러(약 11조원)로 늘었다.
19개월에 걸친 미 국무부 조사에 따르면 이들 은행의 유로화ㆍ미 달러화 딜러들은 2007년 12월 일명 ‘카르텔’이라는 온라인 비밀 대화방을 개설, 2013년 1월까지 환율을 조작해왔다. 주로 유로화나 미 달러화를 동시에 매매해 가격을 조작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스스로를 ‘선수’ ‘보병’이라 부르며, 이들은 ‘우리는 함께 죽는다’는 구호를 나누는 등 시종일관 적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했다. 바클레이스 딜러는 2010년 대화방을 통해 “속이지 않으면 어떤 시도도 할 수 없다”며 작전을 이끌었다. 또 다른 딜러는 “강한 마크업(딜러가 상품 가격을 높게 재평가하는 것)이 중요한 열쇠”라며 “당신은 고객이 얼마 없지 않은가, 때문에 돈을 벌 수도 없다, 어리석게 굴지 말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담합이 성공한 때에는 “우리는 성공했다, 당신들과 키스를 나누고 싶진 않지만 맥주는 한 잔 하고 싶다”는 농담을 주고 받았다.
해당 은행들은 일부 딜러들의 소행일 뿐 기업 전반에 걸친 조직적 범죄는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는 “소규모 집단의 행동, 또는 단 한 명의 직원이 저지른 행위가 전체 기업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국은 소속 직원의 부정을 미리 단속하지 못한 은행의 책임 역시 크다는 입장이다. 로레타 린치 미 법무장관은 “해당 은행들은 피해를 입힌 수준에 상응하는 벌금으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이번 제재가 공공의 번영과 법의 공정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이익 추구 행위를 단념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