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기고] 시간선택제 정책이 성공하려면

입력
2015.05.21 13:51
0 0

날마다 ‘전쟁’이다. 식사 준비하랴, 아이 어린이집 보내랴, 출근 준비 하랴. 허겁지겁 집을 나서면 또다시 만원 지하철에 시달려야 한다. 출근하기도 전에 몸은 이미 지치고 만다.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조바심부터 난다. 부리나케 아이 데리러 가야해서다. 일과 가정을 다 잡아보겠다는 건 부질없는 욕심이었음을 금방 깨닫는 것이 워킹맘의 현실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은 간단하다. ‘일가(家)양득’. 고단한 워킹맘의 현실을 바꿔 보자는 것이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도 넉넉하게 출근하는 여유,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을 집에서 보살피는 넉넉한 오후. 상상만 해도 멋진 일이 아닌가. 결코 쉽지 않아 보이는 이 정책을 위해 정부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고용정책이란 정부의 의지나 법의 강제성만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사가 따라주어야 한다. 고용정책에서 정부의 역할이 ‘과감’하면서도 ‘섬세’해야 하는 이유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 역시 노사 모두에게 ‘매력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

첫째, 노동계의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시간선택제 정책의 기본 컨셉트는 ‘행복한 근로자 만들기’다. 정부가 중심을 잘 잡아 자칫 ‘알바 양산제도’로 전락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노동계의 막연한 거부감도 실은 그런 우려에서 비롯됐다. 최근 정부가 ‘전환형’ 시간선택제 정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동계의 불신을 해소한다는 측면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둘째, 기업에게 ‘확신’을 주어야 한다. 시간선택제가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기업이 꺼리면 근로자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희망은 있다. 기업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근로의 ‘양’보다는 ‘질’이 더 중요한 시대다. 페이스북 본사 옥상에 산책길을 만들어 둔 것이나, 삼성이 자율적 출퇴근제를 시행하겠다는 것도 이런 시대 변화의 흐름을 읽어 낸 결과다.

이제는 짧고 굵게 일하는 게 정답이다. 그런데도 기업은 ‘전일제 장시간 근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방법을 몰라서다. 기업은 업무를 나눈다는 것부터가 생소하다. 뭐든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주저하기 마련이다. 정부의 지원은 이 대목에 집중될 필요가 있다. 일단 경험해보면 확신이 생긴다.

셋째, 시간선택제 정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시간선택제는 고용확대정책만은 아니다. 여성근로자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중년 근로자에게는 재충전의 수단으로, 장년 근로자에게는 퇴직준비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 경영 위기 상황에서는 근로자의 고용안전판 역할도 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노동시장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구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획일적인’ 근로체제와 ‘남성 중심’의 직장문화를 그대로 고수할 수는 없지 않은가.

“행복한 근로자가 많을수록 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진다”. 시간선택제 정책은 이 명제가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한 ‘흥미로운 실험’이다. 시간선택제를 도입한 기업 10곳 중 7곳이 인력난 해소와 생산성 향상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게 들리는 이유다. 언젠가 일본 법학자들과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들의 반응이 묘했다. ‘설마’ 하는 표정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일본조차도 ‘시간제 근로’는 그저 ‘여성부업’에 머물러 있다. 한국이 북유럽에서나 들어봤음직한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정착시키려 한다니 그들에게 곧이 들렸을 리 없다.

시간선택제 근로모형은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정책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제도다. 매력적인 제도로 다듬고 가꾸는 일은 이제 노사의 몫이다. 기왕이면 ‘스마트폰’ 같았으면 한다. 한국은 늘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일본이다. 그런 일본을 한국은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제쳤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도 그랬으면 좋겠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