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동아리 인기 드높은 대학가
허세냐, 관심 원하냐 욕지거리에
벗 오라비 누이 어버이 근심해도
꿋꿋이 우리 것 지킨 학생들 있더라
그냥 좋아서 한복 차림 등교하고
학기에 두 번 한복 교실까지 열었네
전통과 맺은 인연 후회는 없어라
‘취업 동아리 ○○에서 상반기 공채 대비 10기 신입 회원을 특별 추가 모집합니다.'
‘10대 대기업 입사에 뜻이 있는 재학생 모시는 스터디 동아리!’
캠퍼스 내 게시판에는 동아리 회원 추가 공모 게시물로 넘쳐난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가히 창업동아리, 취업동아리 전성시대다. “취업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선배들이 많은 동아리를 가장 선호한다”는 어느 대학생의 말은 이제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한 대기업 그룹이 지난 3월 대학들을 대상으로 취업설명회를 진행하는 자리에서도 “취업 정보 획득을 위해 동아리를 적극 활용하라”고 주문할 정도였으니 구직난에 허덕이는 오늘날 대학생들의 눈에 친목과 취미, 전통과 고전을 위한 동아리는 한가하기 짝이 없는 사치의 대상이 돼 버린 듯하다.
하지만 부모님과 친구, 주변의 ‘우려’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전통을 찾아 지키려는 ‘용감한 청년’들도 있다. 비록 동아리의 명맥을 잇기 위한 최소한의 회원 수를 겨우 유지하면서 주변의 눈살을 따갑게 받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의 ‘옛 것’을 계승하려는 대학생들의 ‘동아리 분투기’를 들어봤다.
한복 입고 등교하는 정성윤씨
“어머 쟤 좀 봐. 관종(관심 받고 싶어 하는 종자의 줄인 말)인 가봐”
한복을 차려 입고 학교에 등교하는 날이면 주변에선 어김없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 ‘관종 아니냐’ ‘허세부리는 거냐’ 등 주변 목소리에도 정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중앙대학교 국문학과 3학년인 정씨(22)는 전국 최초 대학교 한복 동아리인 '햇귀'의 2015학년도 회장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복이 좋았다. 어릴 적 TV와 영화에서 사극을 볼 때면 배우나 작품의 완성도 보단 고운 자태의 한복에 관심이 갔다. 오죽하면 고3시절 정씨가 ‘대학가면 이건 꼭 해야겠다’고 적어놓은 버킷리스트엔 ‘아르바이트를 해 한복을 사기’가 포함돼 있었을 정도.
그래서 정씨는 2013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한복 입기' 소모임에 가입해 한복을 알리기 시작했다. 본인처럼 한복에 무한한 관심을 갖고 있던 3명의 멤버가 모였고 ‘한복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막무가내로 회원을 모았다. 그렇게 3명에서 시작한 소모임은 작년 문과대 정식 동아리가 됐고, 해가 처음 솟을 때의 빛을 일컫는 순 우리말 ‘햇귀’를 따 동아리 이름도 만들었다. 올해는 중앙대 중앙동아리로 승격돼 현재 35명의 회원을 받았다.
동아리 햇귀는 비정례적으로 ‘한복 입고 등교하기’를 실천한다. 주변에선 대체로 어색한 시선을 보내지만 ‘예쁘다’는 평가를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 한복을 입고 등교하는 이유도 주변 사람들에게 한복의 멋을 알리는 동시에 친숙함과 익숙함을 주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동아리 차원에서 매 학기 2차례 대상의 제한 없이 ‘한복단기학교’를 열고 한복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한다. 정씨는 “한복의 역사와 여성한복, 남성한복의 차이를 설명하고 계급에 따른 한복장신구도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며 “지난 4월 진행한 단기학교에는 외국인과 한복에 관심 있는 중고등학생까지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한복을 좋아해서 동아리를 만들었고, 한복의 가치를 공부하고 즐기며 나누고 많은 이들에게 이러한 즐거움을 알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는 정씨도 취업 동아리 열풍 속에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정씨는 “주변 친구들이 대외활동이나 마케팅 동아리 등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 활동을 하는 걸 보면 ‘내가 이런 동아리만 해도 괜찮을까’ 싶을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씨는 당당하다. “지금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능력이 돼야 나중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걸 추진할 능력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막걸리에 흠뻑 빠진 김성재씨
경희대 경영학과 4학년인 김씨(26)는 올 초 어머니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성재야 너 매일 술만 먹고 돌아다니는 거 아니지? 지금은 취업 준비를 잘해야 할 시기란다.” 김씨의 어머니는 다름아닌 아들이 활동하는 막걸리 동아리 ‘누룩(NULOOK)’의 블로그를 우연히 봤다. 블로그에는 양조장 사진, 막걸리 사진 등이 빼곡했다. 아들이 음주 동아리 활동을 하는 줄 알고 다급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던 것. 하지만 블로그를 찬찬히 보면 김씨가 올린 글은 막걸리의 역사, 유례, 가치 등을 담은 내용이다.
김씨가 회장을 맡고 있는 동아리 누룩은 한국의 전통유산으로서의 막걸리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전국의 양조장을 견학하며 손수 술을 빚는다. 멀게만 느껴지는 전통 술인 막걸리를 직접 만들면서 체험을 알리는 취지이다.
김씨는 애초 막걸리를 창업 아이템으로 여겼다. 2년 전 한 사회적기업 창업대회에 출전을 하고자 막걸리라는 아이템을 생각해낸 김씨는 그러나 쓰라린 실패를 맛봤다. 지역의 양조장과 주류 매장을 연계해 막걸리 판매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막걸리 업계 사람들과 접촉해 봤지만 막걸리에 대한 이해 없이 판매만을 위한 접근에 양조장 측도 일반 주점들도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그러던 2년 전 어느 겨울 막걸리 협회에서 연 ‘막걸리 진흥을 위한 세미나’에 우연히 참석하게 된 김씨는 막걸리가 전통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강의를 듣곤 판매를 위한 활동이 아닌 문화아이템으로서의 막걸리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김씨는 술을 빚어 보니 돈을 주고 마시기만 하던 술이 하나의 창작물로 보였다. “실제로 양조장에 찾아가 막걸리를 같이 빚어 보니 단순히 술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정성으로 만든다는 걸 깨달았어요.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쌀을 씻는 단계에서부터 100번을 씻고, 주무르는 작업을 거칩니다.” 김씨는 술을 빚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작은 잔치를 여는 풍습에서도 공동체 의식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제 4학년인 그는 부모님의 걱정, 취업 준비 등 압박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김씨는 막걸리 동아리를 일찍 시작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고 했다. 오히려 막걸리를 문화 아이템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스팩이 되는 게 아닐까요.”
젊은 태껸인 정국기(22)씨
한양대 태껸동아리 ‘품’ 회장인 정씨(22)는 중ㆍ고교 시절부터 복싱, 검도, 태권도 등 다양한 운동을 즐겼다.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고민도 하지 않고 태껸동아리방을 찾아 가입했다. 정씨는 “전통 무예로서 태껸 특유의 리듬감이 좋았고, 발목이나 정강이 등 다른 무술에서는 다루지 않는 특정 부위를 공략해 상대방을 무력시키는 기술들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도 최근 들어 회의감이 조금은 든다고 고백했다. “솔직히 전통 무예 동아리가 좀 힘든 게 사실이긴 해요.” 한 때 30~40명 정도 됐던 동아리 회원들은 올해 20명으로 줄었다. 또 운동 동아리라고 하더라도 요즘은 무예나 무술이 아닌 헬스등 몸매를 관리하는 형식으로만 관심을 갖는 추세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5월부터 장장 4개월간 진행하는 태껸협회 주관의 태껸겨루기대회에도 학교 차원에서 참가하지 못했다. 참가자 5명을 만들어야 하지만 동아리 회원 수도 줄고 있는데다 5명의 실력자를 뽑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전통무예로서 태껸을 전수받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감은 없다고 했다. “태껸은 평생 제가 몸과 마음을 단련할 운동이고 무예라고 생각해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태껸 동아리를 하면서 만났던 사범님들과 계속 운동을 같이 할 겁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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