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재판부, 징역 4년 선고
"잘못된 공명심… 죄질 극히 불량"
공문서 위조 도운 2명도 형 올려
국정원 허위 확인서 관행 질타도
솜방망이 처벌 논란 1심과 대조
“피고인들은 자신들이 재판을 받으면서 적어도 자기가 하지 않은 범죄로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각하길 당부합니다.”
20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 조작’사건 항소심 법정. 재판장은 증거 조작을 주도한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김모(49) 과장 등에게 이같이 말했다. 재판장은 “윗사람이 싫어하는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이 싫어하는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라”는 ‘대학(大學)’의 한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자기의 처지를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린다’는 뜻이다.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무죄 판결을 받자 그의 북-중 출입경(국)기록 등을 허위로 만들어 유죄로 만드려던 국정원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김상준)는 이날 모해증거위조 등 혐의로 기소된 김 과장에게 징역 2년 6월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4년으로 형량을 높였다. 재판부는 “형사절차에서 진위 확인이 어려운 걸 이용해 출입경기록 등을 다수 위조하고, 허위 공문서를 만들었다”며 “대공수사에서 큰 공을 세우려는 잘못된 공명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동료들까지도 범행에 끌어들이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수사가 진행되자 협력자 김씨에게 허위진술을 종용하는 등 범행 후 정황도 나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해자 유씨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고 변명으로 일관했다”며 검사의 구형대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앞서 1심 판결은 국가기관의 중대 범죄임에도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재판부는 문서 위조를 도운 김모(63)씨 등 2명의 1심 선고(각 징역 1년 2월, 징역 8월)에 대해서도 “‘그 선고는 곤란하지 않은가’라는 게 형사재판을 맡는 판사의 감각”이라며 각 징역 2년, 징역 1년 6개월로 형을 올렸다.
아울러 사실 확인 없이 영사 확인서를 떼는 게 ‘관행’이었다고 주장해온 국정원 이모(55) 처장 등도 질타했다. 재판부는 “그간 대공수사 관행에 문제가 많았다는 점을 드러냈다”며 “관행으로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그를 기초로 허위 내용을 만든다는 것은 변명”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관행은 결과적으로 재외공관이 작성한 공문서의 신뢰성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며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길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인철(49) 전 주선양(瀋陽) 총영사관 영사가 사실 확인 없이 ‘유우성씨의 출입경 사실을 확인했다’는 식으로 발급한 확인서를 증거로 낸 것에 대해 1심이 인정한 ‘모해증거위조’는 무죄가 됐다. 영사 확인서가 유씨를 불리하게 할 목적으로 새로 증거를 조작한 행위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전 영사와 이 영사에게 확인서 발급을 지시한 대공수사국 이 처장과 권모(52) 전 과장은 허위공문서작성ㆍ행사죄만 인정됐다.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이 전 영사와 권 전 과장은 모두 벌금 700만원에 선고유예를 받았다.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은 이 처장은 벌금 1,000만원으로 감경됐다. 재판부는 ‘윗선’으로 지목된 이 처장에 대해 “위조에 적극 가담하진 않았지만 수사책임자로서 허위 문서 작성 등 일부 범행에 가담해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꼬집었다.
김 과장은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씨가 2013년 8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항소심 준비과정에서 협력자 김씨에게 지시해 유씨에 관한 허위 출입경기록을 만들어 오도록 해 증거조작을 주도했고, 이를 증거로 내기 위해 이 처장 등이 나서 영사의 확인서 등도 받아 제출했지만 재판부가 중국 당국에 확인하는 과정에서 탄로가 났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