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하루 앞두고 돌연 취소시킨 것은 도무지 납득 되지 않는 처사다. 반 총장이 그제 개성공단 방문사실을 공개한 뒤 선발대 답사를 불과 몇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반 총장의 긴급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방북허가를 갑작스레 철회하면서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최고 국제기구의 수장을 상대로 하루 사이에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행태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 동안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세계 평화와 인권의 전도사’인 유엔 사무총장을 상대로 이런 장난을 치는 것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조롱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북한은 2009년에도 반 총장의 방북을 취소한 적이 있다. 북한의 행태로 볼 때 임기 중 평양을 방문하겠다는 반 총장의 바람이 성사될 수 있을 지 회의감이 든다.
반 총장이 개성공단을 방문한다고 했을 때 기대가 적지 않았다.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자연스럽게 세계에 알려 공단의 국제화에 긍정적인 여건을 조성할 수 있었다. 북한으로서도 고립과 대결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해 바깥 세계와의 교류 의지를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무엇보다 남북 당국자들이 반 총장 방북을 계기로 직접 접촉해 꽉 막힌 남북 소통의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반 총장의 공단 방문에 우리측에서 외교부, 통일부 등의 고위당국자들이 대거 수행키로 한 것은 북한 당국자들과의 만남을 기대한 측면이 컸다.
북한이 외교적 자해행위를 감수하면서까지 막판에 반 총장의 방북을 불허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공단 근로자들의 임금인상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정부에 대한 압박용일 수 있다. 더 크게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방북한다는 반 총장마저 내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남한 및 국제사회의 제재에 조금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기를 내보이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유엔이 대북제재를 총지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수장인 반 총장에게 불만을 토로한 것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예측하기 힘든 북한의 행태와 이로 인한 한반도의 불안정성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김정은의 러시아 전승기념일 참석을 막판에 무산시키고 반 총장의 방북 약속을 뒤집는 북한의 고립이 군사적 모험주의로 분출될 가능성은 농후하다. 우리 정부와 미국의 당국자들에게서 강경한 대북 경고 메시지가 쏟아지고, 북한이 연일 이를 맞받아치는 상황도 예사롭지 않다. 지금은 무엇보다 한반도 위기지수가 더 높아지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정부는 냉정하게 상황을 주시하며 가능한 모든 경우를 상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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