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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여기자의 노르웨이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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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여기자의 노르웨이 여행기

입력
2015.05.2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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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순(Ålesund)는 노르웨이 북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새로운 예술’(New Art)란 의미를 지닌 ‘아르 누보(Art Nouveau)의 도시’라고 불린다. 1904년 허리케인으로 큰 불이 나 영국, 오스트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50여명의 건축가들이 다양한 모양의 집을 지으며 올레순의 재건을 도왔다. 마을을 거닐기만 해도 마치 박물관 같은 느낌이 든다.
올레순(Ålesund)는 노르웨이 북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새로운 예술’(New Art)란 의미를 지닌 ‘아르 누보(Art Nouveau)의 도시’라고 불린다. 1904년 허리케인으로 큰 불이 나 영국, 오스트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50여명의 건축가들이 다양한 모양의 집을 지으며 올레순의 재건을 도왔다. 마을을 거닐기만 해도 마치 박물관 같은 느낌이 든다.

‘장미의 도시’라 불리는 몰데(Molde). 전망대에 오르면 호수가 자리한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작은 섬들이 떠있는 호수 뒤편엔 흰 눈으로 덮인 봉우리들이 끝없는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다. 이 산봉우리들은 모두 222개.
‘장미의 도시’라 불리는 몰데(Molde). 전망대에 오르면 호수가 자리한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작은 섬들이 떠있는 호수 뒤편엔 흰 눈으로 덮인 봉우리들이 끝없는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다. 이 산봉우리들은 모두 222개.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연정인만큼이나 오지랖 넓고 까칠한 여기자가 여행을 떠났다. 많은 이들이 최고의 여행지로 손꼽는 노르웨이까지 가서, 흠잡을 곳은 없는지 눈부터 부릅떴다. 처음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노르웨이는 너무 조용해. 재미없어"라며 툴툴댔다. 시끌벅적한 서울이 그립기도 했다. 그렇게 눈으로, 입으로 기자정신을 발휘한 지 며칠이 흘렀을까. 어느새 노르웨이의 품격에 젖어 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주말 오후 후미진 골목길 카페의 테라스를 독차지한 노신사처럼 적막한 듯하지만 차분하고, 우리네 아버지들처럼 무뚝뚝하지만 포근한 곳. 노르웨이가 딱 그런 곳이더라.

# 지겨울 수 없는 피오르

“어머머. 노르웨이 가니? 부럽다. 피오르 완전 멋질 거야. 아기자기한 접시들은 또 어떻고”

여행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노르웨이를 꿰뚫고 있다는 듯 각종 정보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한껏 들뜬 모습으로 맞장구를 쳐주고 싶었으나 노르웨이에 대한 감흥이 없던 터라 잠자코 있었다. 또 다른 지인으로부터는 ‘내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곳으로 꼽은 곳이니 잘 보고 와라’라는 당부의 메시지도 받았다. 모두들 피오르에 대한 환상이 대단한 것 같았다. 그렇게, 무덤덤하게 향한 곳이 ‘에이랑에르 피오르(Geiranger Fjord)’다.

페리에 몸을 싣고 좁고 기다란 바닷길을 따라갔다. ‘충주호네’ ‘소양호네’ 일행들 역시 건조한 농담을 쏟아냈다. 그러나 곧이어 나타난 웅장한 산과 아찔할 만큼 가파른 절벽은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와~’ 감탄만 할 뿐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달력에나 나올 법한 풍경을 놓칠세라 연신 셔터를 눌러 댔지만 그 역시 포기. 유명한 사진작가가 어떤 카메라를 가져 와도 제대로 담지 못할 것 같다. 충주호라 외치던 사람들도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곳’이라는 그 메시지를 떠올리며 자연과 하나, 아니 반쯤 포개졌을 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진다. 한국어로 된 안내방송이 울린다. 페리에 오른 한국인들을 위한 선장의 작은 배려다. 에이랑에르 피오르에 숨겨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100% 이해할 수 있으니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피오르’는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와서 생긴 좁고 긴 만이란 뜻의 노르웨이어다. 쉽게 말해 빙하가 만들어 낸 ‘U’자 모양의 대협곡이라고 할 수 있다. 노르웨이 서쪽 해안에는 5대 피오르가 자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에이랑에르 피오르는 가장 아름다운 경치로 손꼽히는 곳으로 2005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에이랑에르에서 헬레쉴트로 이동할 땐 ‘세븐 시스터즈(The Seven Sisters)’ 폭포를 만날 수 있다. 물줄기가 일곱 여인의 머리카락을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으로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다. 하지만 7개의 물줄기를 모두 볼 수 있는 건 여름시즌이고, 평상시에는 4~5개의 물줄기가 흐른다.

이 구간에는 세븐 시스터즈 말고도 엄청난 규모의 폭포가 많다. 초반에는 페리 양쪽을 뛰어다니며 사진 찍기에 바빴는데 나중에는 지쳐서 포기할 정도다. ‘다른 나라였다면 대단한 대우를 받았을 텐데…. 노르웨이에선 세븐 시스터즈급으로 인상적이지 못하면 이름조차 없다니’ 피오르에 대한 감탄은 페리에서 내릴 때까지 이어졌고, 지겹지 않았다.

그림 같은 풍경이 이어지는 공간에서 좌절이 웬 말이냐 싶겠지만 한숨을 짓는 순간도 있다. ‘셀피’(스스로 촬영)를 찍을 때다. 웃어 넘길 일이 아니다. 그림 같은 풍경을 배경 삼아 인증사진을 남기고자 셀피를 찍었다가는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대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오징어를 만나게 될 것이다. 가이랑에르 피오르는 눈으로 즐기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 먹방 찍다가 사람 잡는다?

여행을 가도 맛집부터 검색하고 음식을 앞에 두고 인증 사진부터 남기는 1인이다. 남들은 피오르를 보기 위해 노르웨이로 떠난다지만 오지랖 넓은 여기자는 현지 음식 ‘먹방’(무언가를 직접 먹으며 느낌을 전하는 말)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삼시 세끼 프랜차이즈 샌드위치만 먹었다는 등의 비싼 물가를 강조하는 지인들 덕분에 ‘내 위를 어떻게 채워야 하나’ 걱정했다.

우려대로 노르웨이의 물가는 비싸다. 세계 어디에서나 똑같은 조리법으로 만드는 맥도날드 빅맥 가격 하나만도 1만원을 훌쩍 넘는다.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 뭉크의 ‘절규’(The Scream)는 비싼 물가에서 비롯됐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도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다. 그러나 전망이 좋다고 커피 한잔을 대단한 값에 팔고 있는 한국에 비하면 그리 놀라운 물가도 아니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은 소박하다. 빵 조각에 연어나 새우를 얹어 먹거나 생선도 찜 등 최소한의 조리법으로 요리한다.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이다. 긴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바다와 피오르는 천연 어장이다. 또 산악지대와 야생에서 조달하는 싱싱한 재료 덕분에 특별한 가공 없이도 맛 좋은 날 것의 요리가 탄생한다.

‘노르웨이 먹방’ 문제는 음식 값이 아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생했는데, 바로 ‘짠 맛’.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WHO(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는 하루 2,000mg보다 2배(2013년 기준 4,027mg) 넘게 섭취하는 ‘나트륨 강국’이다. “노르웨이는 연어지” 연어 한 조각을 덥석 물었다가 기겁을 하며 물 한 컵을 들이켰다. WHO 조사 결과를 의심했다. 기자가 싱거운 입맛을 가져서 객관적인 평가가 힘들다? 함께 여행을 떠난 10여명의 한국인 평가가 같았으니 주관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really(진짜)?” 음식이 너무 짜다는 말에 현지인이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연어 한 조각 먹고 물 한 컵을 마시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연어를 접시에 쌓아 놓고 먹는다. 연어만 짠 게 아니다. 음료를 뺀 음식 대부분이 짜다.

노르웨이의 춥고 긴 겨울은 농작물을 심고 수확하기에 부적합하다. 생선과 어패류는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해 염장, 훈제, 건조, 초절임 등 다양한 조리를 가해 보관한다. 어떤 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장기보관을 위해 소금에 절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익숙한 염장음식이 우리 입맛에 짜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싼 음식 앞에 두고 물배 채우고 싶지 않다면 주문할 때 덜 짜게 조리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잊지 말길.

(위쪽)노르웨이에선 스뫼르브뢰트(smørbrød)라 부르는 전형적인 스칸디나비아식의 오픈 샌드위치를 주로 먹는다. 눈으로 즐기기엔 예쁘나 먹기엔 조금 불편할 수 있다. 아까운 토핑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먹자. (아래 왼쪽) 송어찜. 송어의 살이 하얀 이유는 호수의 미네랄 성분 때문이다. (아래 오른쪽) 노르웨이 순달(Sunndal) 지역의 감자는 일반 슈퍼마켓에서 찾기 힘든 고급 종이지만 노르웨이 식탁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위쪽)노르웨이에선 스뫼르브뢰트(smørbrød)라 부르는 전형적인 스칸디나비아식의 오픈 샌드위치를 주로 먹는다. 눈으로 즐기기엔 예쁘나 먹기엔 조금 불편할 수 있다. 아까운 토핑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먹자. (아래 왼쪽) 송어찜. 송어의 살이 하얀 이유는 호수의 미네랄 성분 때문이다. (아래 오른쪽) 노르웨이 순달(Sunndal) 지역의 감자는 일반 슈퍼마켓에서 찾기 힘든 고급 종이지만 노르웨이 식탁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 관광지라 착각하지 마라

노르웨이는 백야(White Night)의 땅. 위도 48° 이상의 고위도 지방에선 한여름에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백야현상이 나타난다. 매년 5월말부터 7월까지는 본격적인 백야 시즌이다. 일상으로 견뎌야 하는 사람이야 고단하겠지만 여행자들에겐 기쁨. ‘밤낮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해가 있다니 맘껏 돌아 다녀야지’라고 생각했다. 미리 일러둔다. 노르웨이 상점들은 대부분 오후 4시~5시면 문을 닫는다. 저녁식사 후 카페를 찾으려 동네 한 바퀴를 돌아도 문 연 상점이 없어 발길을 돌린 게 수십 번이다. 아기자기한 북유럽 접시 좀 사오라던 지인들의 후한이 두렵지만 미안하다. 밤에는 쇼핑은커녕 거리를 마냥 배회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꼽히기도 한다. ‘밤거리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느냐’는 OECD 조사(2012년 기준) 결과 노르웨이 국민의 89%가 ‘그렇다’고 답했다. 밤거리가 안전하다고 해서 길거리에 사람이 많은 건 아니다. “하기야 길거리에 사람이 없으니 안전하기는 하겠네” 일행과 주고받은 얘기의 결론은 그랬다. 그렇게 거리가 한산하단 이유만으로 품었던 작은 실망은 떠날 때쯤 노르웨이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것으로 채워졌다. ‘노르웨이는 관광지가 아니구나. 자연이구나’. 다리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비싸게 왔으니 뽕(?)을 뽑아야지. 한 군데라도 더 방문하려 하고, 기념품 하나라도 더 사려고 했던 지극히 관광객 마인드가 우선이었다. 자연과 함께 숨 쉬며 한없이 여유로운 노르웨이 땅에서 말이다.

백야 조짐이 보이던 여행기간 중 만난 노을이라 더욱 반갑다. 노르웨이는 매년 5월 말부터 7월까지 본격적인 백야 시즌을 맞이한다.
백야 조짐이 보이던 여행기간 중 만난 노을이라 더욱 반갑다. 노르웨이는 매년 5월 말부터 7월까지 본격적인 백야 시즌을 맞이한다.

노르웨이는 한반도의 1.7배, 남한과 비교해서는 4배나 크다. 국토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어 지리적 위치에 따라 자연환경이 다른 모습을 뿜어낸다. 특히 날씨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해가 나면서 비가 내리기도 하고, 금세 눈이 내리기도 한다. 그러니 방수 기능을 탑재한 바람막이는 반드시 준비하자. 길다란 지형 덕분에 마을을 이동하거나 날씨가 변덕을 부릴 때마다 각기 다른 노르웨이를 만날 수 있는 것, 이것이 진정한 노르웨이 여행의 매력 아닐까?

바람막이를 제외하고 노르웨이 여행에서 반드시 챙겨야 할 물건이 또 있다. 선글라스? 셀카봉? 모두 아니다. 여유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쉼 없이 이어지는 풍경을 담을 맑은 두 눈과, 마주치는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미소만 챙기면 된다. 일상을 놓아라. 어렵지 않다. 동화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노르웨이에선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

노르웨이 올레순·몰데·오슬로=글·사진 윤은정기자 yoon@hk.co.kr

백야조짐을 보이는 노르웨이의 밤

헬레쉴트 '이글스 로드' 가는 길 타입랩스

여행수첩

● 자유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오슬로 패스’를 추천한다. 대중교통, 박물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일부 레스토랑에선 할인도 받을 수 있다. 사용 시간별로 티켓 가격이 다르다. 오슬로와 베르겐 관광안내소에서 구입할 수 있다. ● 현지인도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할 만큼 깨끗하니 매번 비싼 생수를 사는 것보다 물통을 휴대하는 것이 좋다. ● 노르웨이 슈퍼마켓에서는 주류구매가 가능한 시간이 제한돼 있다. 월~목요일에는 오후 8시, 금~일요일에는 오후 6시 이후에는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 ● 노르웨이로 가는 직항은 없다. 카타르항공이 인천을 출발, 도하를 경유해 노르웨이로 가는 항공편을 운항한다. 한진관광이 6월 20일·27일, 7월 4일·11일 매주 토요일(총 4차례)운행하는 인천-오슬로 직항 전세기 상품을 내놨다. 주한 노르웨이관광청 (02-777-5943) 또는 www.fjordtours.com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아틀란틱 로드’. 다리가 휜 이유는 허리케인 때문이며 국내 CF에 소개돼 유명해졌다. 일행들은 ‘황천길’이라 불렀다.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아틀란틱 로드’. 다리가 휜 이유는 허리케인 때문이며 국내 CF에 소개돼 유명해졌다. 일행들은 ‘황천길’이라 불렀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에이랑에르 피오르(Geirangerfjord). 아찔한 빙하절벽, 눈부시게 푸른 바다, 아담한 마을이 한 데 어우러져 비현실적인 풍경을 이룬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에이랑에르 피오르(Geirangerfjord). 아찔한 빙하절벽, 눈부시게 푸른 바다, 아담한 마을이 한 데 어우러져 비현실적인 풍경을 이룬다.
바이킹이 타던 배 앞머리.
바이킹이 타던 배 앞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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