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질주하고 있는 우리,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기 위해선 뒤쪽 상황도 함께 살펴야 한다. 백미러에 비치는 모습을 통해 현재의 내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야 돌발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꽉 막힌 도로 위 무심코 바라본 백미러는 묘하게 여유로운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방금 지나온 길, 스쳐간 과거의 영상이 작은 거울 속에 머물러 있다. 먼 미래에 맞춰진 시력으론 볼 수 없는 남루한 현실도 거울은 또렷하게 보여준다. 일상을 스치며 놓치는 소중한 것들, 아쉬운 순간들이 손바닥만한 백미러 속에 있다. 그 속에 또 다른 세상이 흐른다.
겹쳐진 현실과 과거
멀리 보이던 풍경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다시 흘러간다. 그냥 보내기 아쉬운 장면이 영화처럼 백미러에 잠시 흐르다 사라졌다. 미래에서 현재로 이어지며 스쳐간 찰나들이 그 실체를 깨닫기도 전에 과거로 멀어져 갔다. 문득 고개를 돌리면 눈 앞의 현실과 거울에 비친 세상이 겹쳐있다. 한 공간에서 만난 각자 다른 시간의 이미지가 왠지 이질적이다. 노을이 점점 붉어지는 동안 백미러 속 세상은 멈춘 듯 거기 그대로 있다.
마술을 부린 듯
백미러는 앞을 향한 채 뒤쪽을 확인하기 위해 고안됐다. 이 거울은 마술을 부리듯 한적한 도로에 벽을 만들고 벽에 또 다른 통로를 만든다. 눈 앞에 펼쳐진 삭막한 도심, 지루하게 반복되는 장면 속에서도 새로운 상상을 부추긴다. 아주 가끔 뜬금 없는 반영에 깜짝 놀라기도, 호기심 속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백미러는 속임수다.
돋보기를 갖다대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 뒤 돌아 볼 여유도 없다. 차가운 거리, 흐릿하게 지나치는 지루한 일상이 거울에 맺혀 있다. 마치 돋보기처럼 백미러는 흐릿한 현실 한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일상 속 풍경이 멈추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나는 백미러 속에서 맹추격을 당하고 있다. 과거로 향하는 숨가쁜 흐름에 뒤지지 않도록 달리고 또 달린다. 이렇게 삶을 경쟁하는 동안 얼마나 자주 뒤를 돌아 볼 수 있을까.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순식간에 지나쳐버린 순간들, 사라져간 풍경도 사실은 그리 멀리 떠나지 않았다는 뜻일까. 엔진을 끄고 길 위에 선 채로 백미러에 비친 인생을 잠시 되돌아 본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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