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대망론’이 처음 나온 시기는 영호남 지역주의 대결구도가 생긴 1970년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아 충청은 오랜 기간 영호남의 틈바구니에서 캐스팅보트에 머물러왔다. 충청 대망론의 불씨를 다시 지핀 건 늘어난 인구와 유력주자들의 등장이다. 세종시 출범 등으로 충청권 인구가 2013년 5월 호남을 앞질렀다. 반기문, 이완구, 안희정 등 충청 잠룡들 면면도 영호남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성완종 리스트’가 타오르던 충청 대망론에 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국무총리에 오르면서 대선후보 반열에 우뚝 선 이완구는 성완종의 직격탄에 단숨에 고꾸라졌다. 반 유엔총장은 미국에 있으면서 불똥을 맞았다. “성완종과 알지만 특별한 관계는 아니다”는 발언으로 역풍이 불었다. 충청포럼에 자주 참석하고 동생이 경남기업 고문으로 활동하는데 특별하지 않다는 말은 핑계에 가깝다. 최근엔 조카까지 경남기업의 베트남 ‘랜드마크 72’빌딩 매각과 관련한 국제사기 의혹을 받고 있다.
▦ 2년 만에 고국을 방문한 반 총장을 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다. 닷새간의 일정만 놓고 보면 금의환향으로 보이지만 국민들의 관심부터가 부쩍 줄었다. 지난해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했던 것에 비쳐보면 이번 귀국은 초라하기까지 하다. 성완종 파문이 계속되는 와중이어서 반 총장 자신도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적 행보를 최대한 자제하기로 한 것도 그런 이유다. 방한 때마다 찾았던 고향(충북 음성)도 방문하지 않는다.
▦ ‘반기문 대망론’이 한풀 꺾였지만 2년 후의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새누리당 친박계가 김무성 견제용으로 ‘반기문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 새정치연합도 문재인의 리더십이 흔들리면 정권교체 전략으로 ‘뉴DJP 플랜’(호남ㆍ충청연합)을 현실화할지 모른다. 분명한 건 반 총장이 정치에 뜻을 두는 한 성완종 그림자가 줄곧 따라다닐 거라는 사실이다. 반 총장은 어제 “국내 정치는 한국 발전에 헌신할 분들이 국민 판단을 받아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에둘러 말했다. 그가 정말 정치에 관심 없다면 애매한 말은 접고‘대권 불출마’ 선언이라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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