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 베니스비엔날레서 퍼포먼스
“제 퍼포먼스를 보고 많은 분들이 저를 격려해줬습니다. 먼 나라 한국에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식민지로 수탈당한 경험이 있는 모든 나라들이 함께 겪은 아픔이라고 공감한 겁니다.”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와 함께 열린 ‘개인적인 구축물’기획전에 회화작품 ‘영원한 빛-동상이몽’을 전시한 미술작가 한호(43)는 베네치아에서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7일 전시 오프닝 때 선보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묘사한 퍼포먼스가 많은 박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구축물’은 글로벌아트어페어재단이 2011년부터 베니스비엔날레와 같은 시기에 개최하는 전시로, 공모에 선정된 작가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선보인다.
퍼포먼스는 두 가지였다. 1부는 위안부 피해자로 상정된 여성이 끈으로 속박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모습을 춤으로 표현했고, 2부는 어릴 적 가야금 연주자를 꿈꾸던 주인공이 일곱 명의 분신을 통해 가야금 연주를 하고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상상에서 꿈을 실현하는 내용이다. 한호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연을 좀 더 직접적으로 알리려면 60년 전에 일어난 일을 베네치아에서 재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퍼포먼스를 보고 나니 제 그림을 보는 눈이 더 진지해지더군요. 위안부의 슬픔, 전쟁의 슬픔을 치유하고 싶다는 제 주제의식이 퍼포먼스를 통해 더 잘 전달된 것 같습니다.”
회화작가인 한호는 두껍고 질긴 장지(壯紙) 위에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한민족의 역사를 표현한 폭 15m, 높이 4.5m의 그림을 검은 방 안에 둘러 세웠다. 그림의 중심에 있는 것은 2008년과 2014년에 사망한 위안부 피해자 지돌이ㆍ배춘희 할머니다. 그 양 옆으로 남북한의 평범한 사람들을 그렸다. 한호는 “일제 강점기에 겪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와 한국전쟁으로 우리 민족이 입은 상처는 결국 같은 전쟁의 아픔”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쟁의 아픔 속에도 희망은 있다. 장지에 뚫은 크고 작은 구멍을 통해 뒤편에서 비치는 LED 전구의 빛이 작품 위아래 검은 거울에 반사되면서 보는 이를 환상적인 세계로 이끈다. 생전 전쟁으로 고통을 겪은 이들이 죽은 후에라도 평화로운 이상 세계에 다다르리라는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
한호는 “이번 기획전에 함께 참여한 마르티어 블란스라는 네덜란드 작가와 올 여름 베네치아에서 만나 위안부를 소재로 한 퍼포먼스를 함께 하기로 했다”며 “베네치아 전시를 통해 내가 가야 할 길, 해야 할 작품이 정해졌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인 중에도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있다.
그가 퍼포먼스에서 맡았던 것은 위안부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그의 몸부림을 전달하는 타천(打天) 역할이었다. 하늘을 두드려 하늘과 땅 사이를 매개하고, 인간의 고뇌와 고통을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한호가 만든 개념이다. 그는 앞으로도 타천으로서 역사 속 스러져간 인물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작품을 만들 작정이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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