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영화를 좋아한다.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보거나, 시네마테크 같은 데 종종 들리는 편이다. 영상자료원이 집 근처라 무시로 틀어주는 고전영화를 무료로 보고 올 때도 있다. 1960~70년대 한국 영화는 신성일이 나오는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으로 나뉜다는 법칙(?)을 거기서 깨달았다. 소년 시절엔 동시상영관엘 자주 갔다. 성인 영화를 몰래 보겠다는 심사였지만, 돌이켜보니 말초신경 자극보다는 난데없이 영혼의 심급을 건드린 영화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멀티플렉스에 앉아 있으면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기분만 든다. 입체가 부각되는 3D 화면 같은 건 외려 이물감만 더 심해 몰입이 잘 안 된다. 극장 설비뿐 아니라, 요즘의 최첨단 기술로는 가공 못할, 거칠면서도 여백이 많은 물성을 옛날 영화들은 가지고 있다. 흑백영화가 가진 선명한 명암 대비는 사람 마음의 빛과 어둠을 질료 자체로 명징하게 드러낼 때가 많다. 의도된 기술이라기보다, 매체의 한계와 특성이 그 자체로 내용을 만들어내는 거라 볼 수 있다. 영화란 기본적으로 그걸 보고 있는 사람의 물리적 각성에 의해 품질이 결정 난다고 믿는 편이다. 색을 탈거한 영혼의 기본 뼈대나 밑그림 같은 걸 흑백영화는 보여줄 때가 있다. 거기에 자신의 감정을 입히고 영혼의 골격을 살피는 건 당연히 보는 이의 몫이다. 흑백영화. 영혼의 색칠놀이 도구일지도 모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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