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프로젝트 국제현상설계 공모 당선작이 정해졌다 서울시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네덜란드 건축ㆍ조경 전문가 비니 마스가 1등으로 당선되었다. 낯선 이름으로 들리지만, 비니 마스는 사실 한국과 인연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부산 센텀시티 계획,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서울시나 부산시가 대규모 도시 재개발 계획을 세울 때 마다 현상설계 경기에 초대 받았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공사가 될 뻔한 용산 재개발에도 물론 빠지지 않았다. 9ㆍ11 테러 당시 화염에 휩싸인 쌍둥이 빌딩을 연상케 하는 건물을 용산에 세우겠다고 해 국내외에서 비난을 받기도 한 바로 그 인물이다. 동대문, 용산 프로젝트에서는 사무실이름 MVRDV으로 발표되었던 데 반해, 이번에는 유독 개인 이름이 도드라지게 강조되었다.
비니 마스라는 이름보다 더 생소한 것은 ‘건축ㆍ조경 전문가’란 대목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새로운 구조물을 짓지 않고 기존 고가도로를 공원으로 바꾸는 작업이라는 점, 그리고 ‘서울수목원’을 주제로 내걸며 발주처의 의도를 잘 반영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조경이란 말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색함은 여전하다. 우리는 누구도 판사나 검사를 가리켜 법 전문가라고, 의사를 일컬어 의료 전문가로 부르지 않는다. 비니 마스를 일컫는 단어는 ‘건축가’로 충분하지만, 공무원과 기자 모두 이 세 글자로는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 분명하다.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건축가가 하는 일과 직능에 대한 인식이 미약하다는 뜻이 아닐까.
실제로 얼마 전까지 ‘건축’은 일상생활에서 입에 올릴 일이 거의 없는 단어다. 건설, 집, 부동산 등이 건축을 대신해도 큰 문제가 없으니 굳이 건축을 입에 올릴 필요가 없다. 건축이란 단어는 건축계를 떠나서는 잘 쓰지 않았기에 건축가라는 단어 역시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architect’는 번역할 때마다 골칫거리가 된다. 건축가라고 번역해서는 일반 대중에게 쉽게 의미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워쇼스키 남매의 ‘매트릭스 2ㆍ리로디드(2003)’ 마지막 장면에서 네오는 매트릭스를 설계한 ‘architect’와 대면한다. 한국의 영화 번역가는 이를 뭐라고 옮겼을까? 놀랍게도 어떠한 번역어도 택하지 않고 ‘아키텍트’라고 음독했다. 가상이기는 하지만 세계 전체를 창조해낸 이 인물의 직업을 한국에서는 ‘건축가’로 부를 수 있다고 상상하지 못한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인셉션(2010)’에서 주인공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다른 이의 꿈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꿈을 설계해 줄 사람을 찾는다. 대학 시절 은사(칠판 가득 고전 건축 그림을 그려놓고 주인공을 맞는)는 젊은 ‘architect’를 소개해준다. 꿈이긴 하지만 도시와 건축을 마치 실제로 있는 것처럼 만들어야 할 인물이 건축가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그러나 자막 번역가가 이번에 선택한 단어는 ‘설계사’이다. 인간이 사는 환경 전체를 관장하고 창조하는 이라는 의미가 단지 도면을 그리는 사람으로 축소된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은 사람들이 건축을 몰라주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존재와 사회적 역할이 그간 미미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건축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서울시가 ‘건설에서 건축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포럼과 아카데미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지만, 시민들이 일상에서 두 단어의 차이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아직 건축은 문화의 양태이기보다 건설과 개발의 부산물, 부동산 이익의 수단이기 십상이다. 자고, 먹고, 일하는 일상이 세심하게 배려된 거리와 건축물 속에서 벌어질 때, 비로소 아키텍트, 설계사, 건축ㆍ조경 전문가는 제 이름을 찾아 건축가로 불리게 될 것이다. 비니 마스의 설계안과 함께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이 서울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는 데 기여하길 응원하고 바란다.
박정현 건축평론가ㆍ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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