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독자 의회 이어 조세권, 독립 땐 북해유전 소유권도 얻어
英 외국인 노동자 480만명 사상 최고, EU 탈퇴 않는 한 제어 방법 없어
2017년까지 EU 탈퇴 국민투표
7일 치러진 영국 총선 결과, 보수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이번 총선에는 노동당의 표밭인 스코틀랜드에서 스코틀랜드독립당(SNP)이 돌풍을 일으킨 데다, 선거 막판 노동당이 승리할 경우 SNP에 영국이 휘둘릴 것이라는 보수당의 공격이 잉글랜드 유권자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해 모두의 예상을 깨고 보수당 단독으로 331석을 확보해 완전한 보수당 정권이 들어섰다.
영국의 공식 국호는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4개국이 하나로 모여 구성된 연합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대로부터 서로 다른 민족들이었고 숱한 전쟁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과정 속에 엄청난 적개심을 키우며 살아왔음에도 무력을 통한 정복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연합하였기 때문에 영국은 화합의 성공모델로 귀감이 되었다. 스코틀랜드인들이 잉글랜드인들을 욕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단순한 유머에 그치고, 실제로 영국의 각 민족들간의 심각한 반목과 불화, 차별은 없다. 이 같은 조화는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연합왕국’이 ‘분열의 왕국’이 되어가는 듯 하다. 특히 전통적 라이벌 관계였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 갈등이 심해졌다. 이번 총선 결과는 영국을 완전히 남북으로 갈라놓았다
스코틀랜드 독립 재추진, 영국 내 4국 “자치 확대”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겠다며 국민투표를 실시했던 게 불과 작년 9월의 일이다. 투표 결과 독립에 실패했지만, 당시 독립을 주도했던 스코틀랜드민족당(SNP)가 이번 총선을 통해 스코틀랜드의 59개 선거구 중 56개를 장악하면서 사실상 일당체제를 구축해버렸기 때문에 그 막강한 힘으로 다시 독립을 추진하려고 한다. 작년 국민투표 결과 독립찬성이 44.7%, 반대는 55.3%였다. 이번 총선으로 스코틀랜드 정권을 완전히 거머쥔 SNP가 45%의 독립염원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총선 이후 SNP 실세이자 전 당수였던 새먼드(Alex Salmond) 의원은 독립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보수당은 발끈했고, 의회에서 스코틀랜드 의원들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강경책을 추진하겠다고 받아 쳤다. 사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입장에서 보기에 과도할 정도로 특혜를 받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방분권을 통해 자국만의 의회, 즉 스코틀랜드 의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영국 중앙의회(웨스트민스터)에도 스코틀랜드 의원들이 버젓이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잉글랜드만의 지역의회는 없다. 그러니까 스코틀랜드는 자국 내에서 자신들끼리 내정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의정활동을 하면서도 연합왕국에서도 남들과 똑같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보수당은 잉글랜드만의 독자의회 제정도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중앙의회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각 나라들이 서로 자치를 하게 되면, 중앙의회는 미국과 같이 연방의회와 같은 상태로 약화될 것이 뻔하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영국의 경제력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영국 북해유전이 독립국인 스코틀랜드 영해와 경제수역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영국산 원유는 우리나라와 영국의 교역 주요 품목 중 5위권에 포함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0년 이후 ‘아랍의 봄’ 사태와 최근 이슬람국가(IS)의 등장으로 인한 전쟁위험 등 중동 정세불안이 심각해 지면서 우리나라 정유업계는 기존 걸프지역으로부터의 원유수입 비중을 줄이고 이를 북해산으로 대체해오고 있다. 수입원이 영국이 아닌 스코틀랜드로 바뀌게 되면 당장에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다행히 원유를 제외하면 한국이 스코틀랜드와 거래하는 품목은 위스키를 빼면 많지 않기 때문에 무역피해가 그리 크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독립국으로서 기존의 영국과 다른 정책환경이 조성되면 스코틀랜드만의 독자적인 산업규제에 대응해야 하므로 우리 기업으로서는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이미 스코틀랜드는 올해 4월 1일부터 독자적인 조세권까지 획득했다. 아직은 잉글랜드와 세법이 크게 달라진 상태는 아니지만 이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게다가 잉글랜드까지 독자의회를 설립하는 식으로 영국을 구성하는 4개국이 서로 흩어질 경우, 우리기업들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 분명하다.
브릭시트 '제 2 라운드‘ 시작
영국의 분열 우려는 국내에만 그치지 않는다. 브릭시트(Brexit), 즉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려는 움직임도 가속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보수당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해 재집권하면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2017년 전까지 시행하겠다고 공약했다. 영국은 역사적으로 반(反)유럽정서가 강했는데, 최근 금융위기를 거치며 유럽과의 경제적 이익충돌이 생기자 유럽을 버리려는 움직임이 더욱 심화되는 현상이다. 금융위기 당시 금융권을 규제하기 위해 EU가 추진하던 금융거래세 도입은 영국정부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다. 사실 영국과 대륙유럽 국가들은 너무 다른 점이 많아 공존이 쉽지 않다. 특히 잘 알려진 대로 영미법의 본산인 영국과 대륙법 중심인 유럽의 법체계에서의 충돌은 구조적으로 영원히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문제다.
영국은 자국의 주권을 유럽에 빼앗기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영국이 이전까지는 그럭저럭 EU와 잘 협력해왔지만, 금융위기가 그 동안 숨겨졌던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냈다. EU는 ‘거주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어 EU 시민이라면 회원국들 중 어느 나라라도 자유롭게 가서 살며 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영국의 높은 파운드화 가치와 매력적인 복지환경 때문에 재정위기에 직면한 유럽국가 출신자들은 너도나도 영국으로 몰려들었다. 영국인들은 이들 이주민이 영국의 복지 혜택만 받고 있다며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EU의 일원인 영국 정부는 EU을 탈퇴하는 방법 외에 이들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 지난 13일 영국 중앙은행 영란은행(BoE)의 마크 카니 총재는 영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480만명에 달해 사상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들 중 약 200만명이 EU 시민들로, 역시 이 비중 또한 사상최고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영국정부는 이 때문에 영국의 임금수준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난 보수ㆍ자민당 연립정부 당시 자민당은 보수당에 끌려 다니기만 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단 한가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으로서 제 역할을 한 것으로 칭찬받는 일이 있는데, 바로 보수당이 추진하던 민간인 사찰 법제화를 막았다는 것이다. 바로 악명 높은 ‘염탐면허’(Snooper's Charter)가 그것이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드러났지만 영국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세계 도감청 시스템인 프리즘(PRISM)의 파트너 국가로, 그 대상을 가리지 않고 전세계를 감시해왔다. 현대 민주주의의 본산이라고 자부하는 영국이지만 항상 인권침해 문제로 비난 받는 이유다. 염탐면허는 특히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일반 국민들의 모든 것을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영장 없이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영국의 모든 국가기관들은 심지어 국민들의 인터넷 검색기록까지 마음대로 볼 수 있다. 2014년에는 자민당이 사활을 걸고 연정의 분열을 각오하면서까지 의회에서 이 같은 법안의 통과를 막았지만, 이제 보수당 단독 정부가 구성된 만큼, 내무부 장관 테레사 메이(Theresa May) 주도로 다시 추진되고 있으며, 조만간 의회에서 아무 견제없이 통과될 전망이다.
개인 프라이버시를 무시하는 이러한 법은 영국이 서명국으로 있는 유럽인권협약(ECHR)에 위배된다. 이 때문에 영국은 유럽인권협약으로부터의 탈퇴 추진을 발표했다. 이 역시 이번 총선에 승리한 보수당의 공약에 포함된 것이었다. ECHR에서 탈퇴하고 이를 영국 전통의 권리장전으로 대체하게 된다. 이로 인해 영국정부는 인권문제에서 완전한 자주권을 행사하게 되며, 이민자나 범죄자들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 항소권의 근거가 현행 17개에서 4개로 줄어들고, 연간 7만건에 달하는 항소건수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영국이 더욱 강력한 이민제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되며, 더 나아가 EU에서 완전한 자주독립(탈퇴가 아니더라도)을 실질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기반으로 활용된다. 우리 기업인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은 이번 보수당 정권 하 영국에서 기업활동에 있어 정부의 무차별적인 감시에 놓이고, 고용정책 또한 심한 제약을 받게 될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보수당 집권으로 인한 영국의 이 같은 변화는 당분간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영국의 경제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가져오기 때문에 무역에 있어서도 단기호재를 예상할 수 있다. 선거 개표과정에서 보수당의 재집권이 유력해지자, 곧바로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 대비 파운드 가치가 1% 상승한 1.54달러를 기록했고, 증시도 선거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권이 노동당으로 교체되지 않아 정부 정책기조가 기존에 비해 급격히 변화하지 않을 것임은 물론 이번에는 자민당과의 연정으로 겨우 유지했던 정권이 아니라 보수당 단독으로 수립된 정부이기에, 정책운영에서 견제가 줄어들어 더욱 강력한 정부를 구성하게 됐기 때문이다. 과반의석을 확보한 보수당 정부는 정책입안과 실행에 있어 모든 견제에서 자유롭다. 이는 영국 시장환경 변화를 예의주시하는 우리 기업들에게는 영국정부의 정책이 안정된 환경이 구축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영국을 구성하는 4개국간 조세환경과 산업규제가 상이해지고, EU 탈퇴 여부가 2년 내에 결정된다는 점에서 우리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영국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박영하 KOTRA 런던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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