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왜곡하고 과거 잘못 언급안해"
"책임 물을 것"… 법적 대응도 예고
1991년 ‘유서대필 조작사건’에서 운동권 동료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파렴치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강기훈(51ㆍ사진)씨가 누명을 씌운 검찰과 진실을 판단하지 못한 법원에 사과를 공개 요구했다. 앞서 14일 대법원의 재심 무죄 확정판결로 24년 만에 자살 방조자라는 ‘주홍글씨’는 지워졌지만, 그에게 지금 남은 것은 간암 투병의 고통뿐이다.
강씨는 18일 ‘대법원 선고에 대한 강기훈 입장’이라는 제목의 이메일 편지 글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통해 공개했다.
강씨는 편지에서 “당시 저를 수사했던 검사들과 검찰 조직은 제가 유서를 쓰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진실을 왜곡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법원은 91, 92년은 물론이고 재심 후에도 2009년 검찰의 재항고 사건을 3년이나 방치했으며,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도 과거의 잘못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며 “법원도 한 마디 사과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서는 김기설 본인이 쓴 것이고 강기훈이 쓴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것을 확인 받는데 무려 24년이 걸렸다”며 “이제 역사적 판단과 책임이 필요한 때가 됐다”고 말했다. 강씨는 자신이 항소심에서 진술한 말을 편지에 인용해 검찰과 법원에 메시지를 전했다. “진정한 용기는 잘못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강씨는 “저를 끝으로 다시는 이런 피해자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책임을 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마땅합니다.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그는 병세에 대해 “저는 지금 건강이 안 좋습니다.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저는 건강이 악화되어 지인들과도 연락을 끊고 지방에서 요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되새기며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몸이 감당하기 어렵기에 앞으로도 직접 제 말씀을 드리는 것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밝혔다.
강씨는 그 동안 송상교 변호사 등에게 “과거 (검찰) 수사관들이 했던 말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다”며 “추상적이지 않은, 구체적인 사과를 원한다”는 말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강씨에게 유감이라도 표한 사건 관계자는 아직 없다고 한다. 대법원 선고 직후 검찰 관계자는 “증거 판단에 아쉬움이 있으나, 대법원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만 밝혔다. 대법원은 무죄 선고를 하며 “사건번호 2014도2946 피고인 강기훈, 검사 상고를 기각한다”고만 했을 뿐이었다. 지난해 서울고법의 재심 무죄 선고에서도 사과는 없었다.
검찰은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감정인 단 1명의 부실한 필적 감정과 위증을 토대로 강씨를 기소했고, 강씨는 92년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 받아 3년을 복역했다. 2005년 경찰청 과거사위원회는 “검찰이 미리 유서 대필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불리한 증거를 배척하는 등 무리한 수사를 한 것이라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후 김기설씨의 친구가 김씨의 필적이 담긴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을 새로 내놓아 재감정이 이뤄졌고, 이를 토대로 강씨는 재심을 청구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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