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ㆍ시민 등 1000여명은
옛 전남도청 앞서 따로 기념식
18일 오전 광주 국립 5ㆍ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5ㆍ18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식이 올해도 정부의 홀대 논란 속에 ‘반쪽행사’로 치러졌다. 국가보훈처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에 항의하는 유족들이 예고대로 기념식을 외면한 채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ㆍ18민주광장에서 따로 기념식을 가진 것이다. 유족들 중 소복을 입은 할머니 서너 명이 기념식장을 찾긴 했지만 기념식 내내 당황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유족들이 빠진 기념식에선 낯선 광경들이 연출됐다. 정부는 기념사를 부총리 기념사로 격하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의 기념식 불참과 국무총리 부재에 따라 총리 직무대행 자격으로 참석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기념사를 대독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기념사를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했지만 지난해엔 불참하면서 국무총리가 기념사를 했다. 광주지방보훈청장이 하던 경과보고(5ㆍ18 역사와 현황 소개)도 국립 5ㆍ18민주묘지관리소장이 읊으면서 일부 참석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념식이 끝난 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유족들은 설움과 원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유족 주모(79) 할머니는 “대통령 기념사를 슬그머니 총리 기념사로 바꾼 정부가 이젠 부총리 기념사로 격하시킨 것도 모자라 경과보고까지 묘지지기에게 시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는 5월 유족들뿐만 아니라 5월 영령들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인 빠진 기념식’이었지만 행사장에 마련된 2,000여 개의 좌석은 오히려 모자랐다. 이날 광주지역 중ㆍ고교생 900여명과 보훈처 관계자 등이 기념식장에 동원된 가운데 많은 학생들이 좌석이 부족해 비를 맞으며 선 채로 행사를 지켜봐야 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보훈처가 너무 많은 인원을 동원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같은 시각,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5월 단체와 유족,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민간 주도의 기념식에선 정부의 5ㆍ18 푸대접에 대해 항의라도 하듯 ‘임을 위한 행진곡’이 행사 내내 울려 퍼졌다. 상당수 유족들과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을 촉구하며 목놓아 노래를 부르면서 흐느껴 울기도 했다. 유족 박모(69)씨는 “오늘 내가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은 ‘오월곡(曲)’이 아니라 ‘오월곡(哭)’이었다”며 “이처럼 정부가 유족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후벼 파도 되는 것이냐”고 눈물을 훔쳤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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