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정책’ 아래 실험 나선 한국일보의 1년
‘작지 않은 성과’… 길게 보고 전략적 선택을 하길
한국일보가 새로운 인터넷 페이지를 연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원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오랜 전통을 가진 매체가 인터넷 서비스를 아예 새 틀에서 시작하는 것은 시련인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새로운 운영 원칙으로 ‘반칙 없는 클린 뉴스’를 표방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어차피 페이지뷰 바닥이니 그런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나중에 페이지뷰가 올라도 그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1년이 지났고, 한국일보는 온라인 조사업체 ‘코리안클릭’ 기준으로 과거 ‘한국아이닷컴’ 시절의 성적을 거의 회복해가고 있다. 아직 선두권 매체들에는 많이 떨어져 있는 게 솔직한 현실이지만 1년 만에 낸 것 치고는 놀라운 성적이다. 사실상 백지에서, 최소한의 인력으로, 그것도 클린 정책을 고수한 가운데 기록한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클린 정책’이라는 게 주목받는다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한국 언론들의 인터넷 운용은 정상적이지 않다. 명색이 1등을 자처하는 신문들이 앞장서서 낚시 기사를 올리고, 남의 기사를 최소한의 인용 절차도 없이 베끼고, 제목과 표현만 바꾼 채 반복적으로 같은 기사를 올리는 이른바 ‘어뷰징’을 스스럼없이 한 지가 제법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일보가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인터넷 운영을 보여주겠다고 나선 건 이유가 무엇이든 박수 받아 마땅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한국일보는 그 선택이 옳은 방향임을 일단 입증한 셈이다.
하지만 ‘클린 정책’은 칭찬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디지털 뉴스 시장에서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일보가 지난 1년 간 보여준 나름의 혁신 시도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근 메이웨더-파키아오 권투 대결을 소재로 만든 멀티미디어 콘텐츠는 한국일보의 그간의 경험과 실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그동안 쌓은 내공의 정도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런 콘텐츠는 외부 독자는 물론 새로운 뉴스 스토리텔링 기법들로 어떤 것이 가능한지 의구심을 갖는 내부 독자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비주얼과 텍스트를 나름 적절하게 배합하고 있는 홈페이지나 SNS 계정도 눈에 띈다.
지금쯤 한국일보 내부의 분위기는 어떨까. 그동안의 혁신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내리고 있을까. 나는 지금쯤 한국일보가 내부적으로 디지털 전략의 실천 과정에서 어떤 고비를 맞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보다 조급함이 클 수 있다. 조급한 쪽은 디지털 부문 자신일 가능성이 높다. 아직 수익 측면에서 어깨를 펼 수 있는 상황은 아닐 테고, 정말 1년 전에 선언한 ‘디지털 퍼스트’로 가고 있는지, 정말 그렇게 가면 되는지 자신 있는 답을 내놓기 쉽지 않을 것이다. 역시 디지털 뉴스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을 갖고 있다. 하나는 지금이야말로 ‘디지털 퍼스트’라는 구호를 비롯해 디지털이냐 아날로그냐 하는 것에 너무 경직되고 성급한 태도로 임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진짜 잘 할 수 있는 일, 꼭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음은 반대로, 적당한 타협으로 섣불리 전체 그림을 망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작은 실험들 속에서 차분히 확신을 구하는 길을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일보가 디지털과 종이 신문에서 보여준 실험들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고지는 멀었다. 한 가지 희소식(?)이 있다면, 비록 눈길을 모은 서비스를 선보이는 경우는 더러 있었고, 페이지뷰에서 앞선 곳들도 많이 있지만 국내에서 디지털 뉴스 시장에서 제대로 성공한 언론사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지금까지처럼 작은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제대로 된 성공 모델을 먼저 만들어낼 기회를 갖고 있다. 작은 유혹과 비판에 휩쓸리지 말고 좋은 성공 사례를 꾸준히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어느 누구도 아닌 한국일보의 몸에 딱 맞는 모델을 잘 찾아가길 바란다.
심석태 SBS 보도국 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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