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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티렉스] 김수현에 맞서는 그 이름, 옥순봉

입력
2015.05.1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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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가에 ‘빅매치’가 별로 없다 했더니 5월 15일부터 빅매치 하나가 성사됐다. ‘삼시세끼 정선편2(tvN)’와 ‘프로듀사(KBS)’의 대결이다. 금요일 저녁 시간대에 제대로 붙었다.

나는 별 고민 없이 ‘삼시세끼’를 선택했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의 알 수 없는 마력에 중독돼서 그렇다. 주부들, 혹은 자취생들은 알 것이다. 삼시세끼 해 먹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밥 하고, 메뉴 고민하고, 반찬과 국 만들어서 식구들 먹이고 나면 산더미 같은 설거지 거리. 그거 치우고 나면 또 다음 끼니를 준비해야 한다. 하루 세 끼 먹고 나면 하루가 훌쩍 지난다. 먹고 사는 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일상의 지옥 같은 쳇바퀴를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게 될 줄이야. 밥 하고, 치우고, 일하고, 또 밥 하고.

정말 이상한 건, ‘이게 대체 뭐 하는 프로그램이야’ 하고 생각하면서도 빠져들어서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중간중간 실 없이 웃고 있다가 ‘야식으로 저 메뉴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가 하면, 급기야 옥순봉과 밤 하늘의 별이 우리 집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삼시세끼’는 묻는다. 당신은 누구와 삼시세끼를 먹고 있는지. 하루 종일 돈 버느라 밖에 나와 있는 우리 가족이 ‘식구(食口)’라는 말과 얼마나 동떨어진 채 살고 있는지. 그리고 하루 세 끼 먹거리 벌어오고, 만들고, 치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일이었는지.

돌아온 ‘삼시세끼’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그래서 반가웠다. 겨우내 밥 해먹느라 좌충우돌하던 사람들이, 이제 밥 해먹는데 좀 익숙해졌나 싶으니 농사 짓느라 다시 우당탕탕이다. ‘삼시세끼’는 나영석 PD를 꼭 닮은 프로그램이다. 뭔가 의뭉스럽다고나 할까. 충청도스럽다고 할까(나영석 PD는 청주 출신이다). 촌스러운 척, 준비 하나도 안 되고 차린 것도 없는 척, 어설픈 척하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계산되고 치열하게 아이디어를 짜내 준비한 결과물이다. 시청자들은 그런 뒤통수를 맞는 줄도 모르고 허허 웃으며 보게 된다. 보고 나면 나영석 PD야말로 진짜 ‘기술자’라는 생각이 든다.

‘삼시세끼’가 얼마나 치밀한 프로그램이냐 하면, 일단 프로그램 제작 배경부터 스토리를 깔아놨다. 꽃할배 시리즈에서 투덜투덜하며 뭔가 만들어낸 이서진을 보고 나영석 PD가 “이 참에 아예 요리 프로그램을 같이 만들자”고 했는데, 그게 ‘삼시세끼’ 제작 배경이다. ‘스토리텔링’을 프로그램 시작부터 깔아놓은 셈이다.

허허벌판 같은 정선의 작은 집에서 제작진들이 아무 것도 없이 맨손으로 만드는 것 같지만, 인터뷰를 보니 촬영에 동원하는 카메라만 40여 대란다. 장난꾸러기 밍키가 달리는 장면을 초고속 카메라로 찍기도 했다(월드컵 중계냐). 정선편 시즌2 첫 방송에선 옥순봉에 내린 첫 봄비 풍경을 초고속 카메라로 훑어낸다. 여기에 정선의 안개 낀 풍광을 공중에서 보여주는 항공촬영 장면까지 보탠다. 그 와중에 등장인물(더하기 등장’동물’까지) 전원에게 확실한 캐릭터도 부여한다. ‘츤데레’ 이서진이나 ‘빙구’ 옥택연은 캐릭터가 확실해서 뭘 해도 공감이 가고 웃긴다. 귀여운 동물을 고정으로 등장시켜 캐릭터까지 부여하는 건, 그야말로 굉장한 아이디어 아닌가. 포털사이트 연예 뉴스에 ‘밍키의 폭풍 성장’이라는 기사가 떡하니 인기 기사로 올라가 있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로 있을 때 갑자기 훅 들어와서 프로그램에 풍덩 빠지게 만든다. 좌충우돌 음식을 만들던 출연자들이 상쾌한 정선의 공기가 느껴지는 듯한 밤하늘 아래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한숨 돌릴 때가 그렇다. 별이 빛나고, 오래된 라디오(혹은 카세트테이프)에서 노래가 흘러 나온다. 만재도에서는 섬 전체를 덮는 듯한 빗소리가 천막을 두드렸다. 아, 나도 바로 저곳에 가서 하루 종일 삼시세끼 챙겨먹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지내고 싶다. 지금 내가 사는 건 뭔가 ‘사람답게 사는 삶’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것 같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삼시세끼 마약’의 덫에 제대로 걸린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프로듀사’를 상대로 ‘삼시세끼’가 그닥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나영석 PD가 “프로듀사와 맞붙는 게 마치 어벤저스와 맞붙는 것 같다”며 엄살을 부리는 인터뷰를 보고 더더욱 확신했다. ‘프로듀사’는 1, 2회 시청률이 모두 10% 정도가 나왔다. ‘삼시세끼 정선2’ 첫 회는 7.9%로, 지상파와 케이블TV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은 삼시세끼가 우위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앞으로 어떤 변수가 생길 지는 모르지만.

‘프로듀사’의 주인공이자 최고의 한류스타인 김수현이 넘어야 할 벽은 이서진, 옥택연이 아니라 옥순봉이다. 그리고 그 옥순봉을 넘어서는 게 아주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그 옥순봉에는, 나영석 PD의 기술과 철학이 다 녹아있으니 말이다.

‘삼시세끼 정선편2’가 방영되고 며칠 후,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나를 보더니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아줌마, 여기 흙 위에 지렁이가 나왔어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닭이 지렁이를 잡아먹는대요.”

“어머, 넌 그걸 어떻게 아니. 어디서 봤니?”

“텔레비전에서요. 삼시세끼에 나오던데요.”

그렇다. 젊은 층은 모르겠지만, 30대 이상 엄마 아빠들은 김수현보다 옥순봉인 거다.

<삼시세끼 정선편2>

tvN 매주 금요일 밤 9시45분. 도시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한 끼' 때우기를 낯설고 한적한 시골에서 가장 어렵게 해 보는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시시콜콜 팩트박스

1 출연진이 잠을 자는 정선의 집은 촬영이 없을 때는 민박집이라고 한다.

2 ‘삼시세끼-정선편1’에 등장한 게스트는 총 13명이었다. 만재도 어촌편에는 게스트가 3명에 불과했다. 배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하는 만재도에 비해 교통이 편한 정선에는 손님이 늘 북적거린다. 이번엔 몇 명이나 올지도 관전 포인트.

3 ‘만재도’ 편이 세운 최고 순간시청률 기록은 15%였다. 정선편이 그걸 넘어설 수 있을까.

4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음식의 레시피, 배경음악이 궁금하다면 삼시세끼 공식홈페이지에 가면 확인할 수 있다.

5 ‘삼시세끼’의 최대 수혜자는 뭐니뭐니 해도 이서진이다. 까칠한 차도남 이미지에서 ‘투덜대면서도 할 건 다 해주는’ 따뜻한 남자 이미지로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 “작업 중이야”라며 폼 잡는 휴대폰 광고를 찍던 그가 이제 일회용 걸레 광고, 80년대 풍의 운동화 코믹 광고까지 섭렵하고 있다. 아줌마 시청자들은 ‘이서진과 최지우가 이 참에 진짜로 사귀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길 바란다. 최지우가 아깝다(사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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