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면서 정숙하고, 부드러우면서 단단해야 하는 조건은 자동차 엔진과 서스펜션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모순된 두 개념이 양립하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이지만 여기 근접하는 것이 자동차업체들이 짊어져야 할 숙명이다. 폭스바겐의 플래그십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투아렉은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한 차로 꼽힌다.
투아렉의 첫 인상은 당당했다. 가로로 길게 뻗은 라디에이터그릴에 이어진 바이-제논 헤드라이트는 실제 차폭(1,940㎜)보다 더 넓어 보인다. 범퍼 하단 사다리꼴 흡기구도 상단 그릴처럼 크롬으로 장식돼 완성도가 높다. 보닛부터 앞 도어를 거쳐 트렁크까지 이어지는 옆 라인은 전체 곡선과 어우러져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인상을 풍긴다.
3.0ℓ 6기통 TDI엔진에 8단 팁트로닉 변속기를 물린 파워트레인을 시험하기 위해 구리 톨게이트로 서울-춘천간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스포츠(S)가 아닌 드라이브(D) 모드인데도 분당 엔진 회전수(rpm) 1,750부터 터지는 최대토크(56.1㎏ㆍm)는 몸을 좌석에 착 달라붙게 만든다. 4,000rpm부터 뿜어져 나오는 245마력은 넉넉했다.
가속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속도계 바늘은 시속 100㎞를 넘어섰지만 ‘얼마든지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듯 rpm은 고작 1,600 부근에 머물렀다. 2.3톤이 넘는 육중한 몸매에도 제로백(정지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은 7.6초다. 고속에서 엔진음은 대화를 나누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나직했다.
경기 가평군 설악인터체인지(IC)를 빠져 나와 설악면 가마소길 인근 야산에 도착했다. 병에 담긴 음료수가 30도 이상 기울어질 정도의 급경사를 가속페달을 깊게 밟지 않아도 무난하게 올랐다. 시멘트 포장이 끝나고 자갈길이 시작됐다.
주행모드 다이얼을 포장길에서 비포장길로 돌리자 차체가 높아졌다. 투아렉의 에어 서스펜션은 속도를 올리면 차체 높이를 낮춰 땅에 착 달라붙는 느낌을 준다. 수동으로 ‘노멀’, 푹신한 ‘컴포트’, 단단한 느낌의 ‘스포츠’ 모드로 전환할 수 있고 트렁크에 짐을 실을 때 휠 하우스에 타이어가 붙을 정도로 차체 높이를 낮춘다. 차체 높이 조절은 최대 300㎜까지 가능하다.
에어 서스펜션은 급회전 구간에서 차체 쏠림을 최소화하고 도로 요철을 넘을 때 발생하는 작은 진동도 잘 받아냈다. 상시 4륜구동 시스템은 어떤 도로환경에서도 우수한 승차감을 제공했다.
투아렉은 2005년 지구를 한바퀴 도는 360도 프로젝트에서 7만6,451㎞를 고장 없이 완주했고, 2006년 155톤에 이르는 보잉 747기를 끌면서 내구성과 파워를 검증했다. 지옥의 랠리라고 불리는 다카르 랠리에 2009년부터 참가해 3년 연속 우승 업적도 남겼다.
하지만 이런 고성능에 어울리지 않게 센터페시아에 위치한 내비게이션은 반응 속도가 느리고 검색화면에 들어갈 때까지 국산 내비게이션보다 두세 번 더 조작을 해야 해 불편했다. 현재 나온 모델은 유럽연합(EU)의 경유차 배기가스 기준인 유로5를 충족하는 엔진을 장착했고, 연말쯤 유로6 모델이 나올 예정이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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