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기술 필요한 스마트카 시대
전기차 배터리·IT·화학·금속 등
고급기술 혼자 만들려 끙끙대기보다
경쟁자와 주고받아 경쟁력 키워
벤츠-닛산 등 적과의 동침 일상화
엔진을 비롯한 핵심 부품과 소재, 심지어 차량 운송까지 자급자족을 위해 애썼던 완성차 업체들이 달라졌다. 경쟁사의 주요부품 공급업체와 거리낌없이 거래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경쟁사들과 제휴를 하고 있다. 지난 100여 년간 내연기관이 지배한 자동차 시장이 전기자동차와 정보기술(IT)이 접목된 스마트카 시대로 급변하는 만큼 ‘각개전투’로 더 이상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다 쓰는 전기차의 ‘심장’
내연기관 자동차의 심장은 동력을 만드는 엔진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저마다 수십 년간 기술력을 축적해 엔진을 개발했다. 엔진 관련 기술은 어떤 경우에도 내줄 수 없는 최고의 기밀이다.
그런데 전기차로 넘어오며 상황이 달라졌다. 핵심부품을 직접 만들기 보다 사다 쓰는 경우가 많다.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1위 LG화학은 현대ㆍ기아자동차를 비롯해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유럽의 폭스바겐 르노 볼보, 중국 상하이(上海)기차와 창안(長安)기차 등 세계 20여개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한다. BMW와 아우디 등의 전기차에 삼성SDI 배터리가 들어가고, 미쓰비시와 베이징(北京)기차 등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로 전기차를 만든다.
전기차용 배터리는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가 2~3년 협업한 결과물이다. 배터리 업체는 경쟁자동차업체들의 전기차용 배터리를 동시에 만들지만 이를 자동차업체들이 꺼릴 처지가 아니다. LG화학처럼 화학기반 기업들이 갈고 닦아온 배터리 기술력을 완성차 업체가 따라잡는 것은 어렵다. 설사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개발하더라도 자체 생산 전기차에만 적용할 수 밖에 없어 투자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
그만큼 신생업체가 넘기에 불가능했던 기술장벽이 대폭 낮아졌다. 엔진 기술력이 한참 뒤쳐진 중국 업체들이 엔진 자체개발 대신 정부의 든든한 지원 속에 전기차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게는 가볍고 강도는 높아서 차체 소재로 선호하는 알루미늄 압연 판재도 자체 개발 및 조달보다 전문업체에서 사다 쓰는 게 효율적이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기업 노벨리스의 경우 크라이슬러 포드 아우디 BMW 푸조 등에 제품을 공급한다.
생존을 위한 ‘적과의 동침’
일본의 토요타자동차와 마츠다자동차는 지난 13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장기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지금도 토요타는 하이브리드 기술을 제공하고, 마츠다는 멕시코 공장에서 토요타의 소형차를 생산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경영자원 활용, 환경 및 안전기술 개발 등 보다 폭넓고 구체적인 협력으로 서로의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이처럼 치열하게 싸웠던 경쟁자들과 협력하는 것은 이미 흐름이 됐다. 메르세데스-벤츠 등을 거느린 독일 다임러AG와 닛산은 2020년까지 중형 픽업트럭을 공동 개발하기로 최근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 6월 멕시코 중북부 아과스칼리엔테스의 닛산 공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와 인피니티의 프리미엄 경차를 공동 개발 및 생산하기로 합의했다.
푸조-시트로엥그룹(PSA)도 GM과 소형 다목적차량 및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공동 개발해 2018년부터 양산하기로 했다. 일본의 토요타 혼다 닛산은 독일과 경쟁하기 위해 자율주행 기술 및 부품 공동 개발도 검토 중이다.
차세대 친환경차인 수소연료전지차(FCV) 협업도 활발하다. BMW와 토요타는 2013년 연구개발 협약을 체결했고, 비슷한 시기 GM과 혼다도 기술을 제휴하기로 했다. 다임러AG와 포드 닛산 역시 2017년 출시를 목표로 수소연료전지차 공동 개발을 진행 중이다.
‘적과의 동침’이 일반화된 것은 나날이 중요해지는 ITㆍ화학ㆍ금속 등 타 분야 기술을 혼자서 감당하기 버겁기 때문이다. 경쟁사와 협력해 개발 비용과 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유리하다. ‘IT 공룡’인 애플과 구글까지 자율주행차 개발에 뛰어들 정도로 급변하는 자동차 생태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그만큼 완성차 업체들의 합종연횡과 타 업종과의 전략적 협업은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한국자동차공학회 이사인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엔진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시대가 저물고, 자동차산업은 이제 기계와 전기전자는 물론 소재 에너지 정보통신 화학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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