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524조원 부채의 본질은 국가의 안일한 재정 운용
소득대체율 시비하는 국민연금, 국제기준으로 보면 19%에 불과
걱정해야 할 건 미래 세대의 부담보다 미래까지 계속될 노인 빈곤
실무기구에서 만든 합의안이 연금개혁 특위로 이관되자마자 지난 2일 여야는 이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려 공무원연금개혁 및 공적연금강화를 위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여야는 우리 사회갈등 해결의 모범 사례로 사회적 대타협을 만들어냈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이 합의안이 알려지자 이상한 사회적 기류가 형성됐다.
이후 일부 언론에서 공무원연금개혁안은 재정 절감 효과나 일반 국민과 형평성에 비추어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또한 개혁 패키지로 요구한 국민연금 명목대체율 50% 인상은 공무원연금재정을 절감하려고 재정규모 면에서 훨씬 큰 국민연금의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라고 비판했다. 공무원연금개혁특위가 국민연금을 논한 것은 월권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이런 반응이 한몫을 했는지 기회 있을 때마다 여당에 대해 공무원연금 개혁을 압박해온 청와대가 이 합의문에 유감과 우려를 표명했다. 보건복지부 또한 여야 합의문을 맹비난했다.
여야와 이해당사자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 및 공적연금 강화 방안이 청와대와 정부, 일부 언론의 반응처럼 미흡하고 부적절한 대안일까. 공무원연금제도가 개혁의 도마에 오른 것은 공무원연금이 막대한 수지적자를 내고 있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투입하는 국고보전금 규모가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무원연금에서 막대한 재정수지적자가 발생한 주된 원인은 그 동안 국가가 연금재정수지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을 등한히 해 온 탓이다. 미래연금지출을 제대로 예측해 그에 상응하는 보험료를 부과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또한 공무원들은 일반 국민과 다르게 국민연금과 퇴직금에 해당하는 급여를 공무원연금에서 받고 있기 때문에 사용주로서 국가는 공무원 보다 더 높은 부담을 해야 했다. 민간 근로자의 경우 사용주가 근로자보다 적어도 2.84배(근로자 국민연금 4.5%, 사용주 국민연금 4.5%와 퇴직금 8.33%) 이상을 부담하듯 국가는 공무원연금의 보험료 부담에서 민간 사용주에 준하는 부담을 했어야 한다. 외국에서도 이런 부담이 일반적이다. 국가가 공무원연금 재정부담을 민간과 비슷하게 해왔더라면 공무원연금 재정수지 적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결국 재정보전금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다른 국가의 공적연금제도와 마찬가지로 우리 공무원연금제도 또한 초기단계에는 연금수급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가 재정수지균형을 위한 노력이나 보험료 부담을 소홀히 했다. 이런 국가의 안일한 공무원재정 운용 및 부담 소홀로 지금까지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연금급여 누적액 즉 잠재적 연금부채가 2015년 현재 무려 524조원이나 된다. 이것이 바로 현재 공무원연금 재정문제의 본질이다.
이런 연금부채 발생을 공무원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국가 재정적자 보전금이 이처럼 과거부채에서 주로 비롯된 것이라면 이에 대한 정부의 향후 청산계획 없이 공무원의 희생과 양보만을 전제로 하는 개혁은 정당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정부가 세수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일반 국민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후한 연금급여를 받고 있기 때문에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연금개혁에 협조했다. 이는 사회적으로 평가 받을만한 행위다.
이번 여야 합의문에서 공무원연금개혁보다 더 큰 파장을 몰고 온 것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확대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미래세대에 빚더미를 물려주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비판했다. 복지부 장관은 한 술 더 떠 미래세대에 대한 도적질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과연 대통령 및 정부의 시각은 타당한 것일까?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은 적어도 국제기준으로 비교하면 40%가 아니다. 각국의 연금급여수준을 비교할 때 자주 인용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서는 각국의 소득대체율을 계산할 때 가상의 평균소득자를 상정하여 명목대체율을 산정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산정할 때 정부가 보고한 평균소득자의 평균소득(월 321만원)을 사용하지 않고 국민연금가입자 평균소득(198만원)을 사용하고 있다. OECD 다른 회원국과 기준을 같이 할 경우 국민연금의 명목소득대체율은 약 32%에 불과하다. 국제기준으로 우리 국민연금의 급여수준은 외국의 기초연금 급여수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낮은 것이다. 이마저 40년간 보험료를 냈을 때 가능한 급여이기 때문에 실제 추정되는 평균가입기간 24년으로 따져보면 소득대체율은 19%에 불과하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연금문제에서 우선 걱정해야 할 것은 미래세대의 부담 과중보다는 미래에 발생할 대규모 노인 빈곤사태다. 2060년에 가서도 우리나라 공적연금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0%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현재 OECD 주요 국가의 공적연금 평균지출에도 못 미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현재 서구국가보다 압도적으로 높을 2060년 우리의 노인인구비율을 고려하면 더더욱 문제다. 청년과 노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지금 청년이 결국 나이 들면 노인이 된다. 미래에도 노인 빈곤이 대규모로 없어지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면 지금 청년들은 이 사회에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이번 여야 합의문에 담긴 공무원연금개혁 및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방안들은 안정된 재정기반 위에서 노후소득보장이라는 공적연금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방안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이 합의안이 실행되더라도 조만간 다시 연금개혁에 나서야 할지 모른다.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우리만치 사회경제적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단 한 번의 영구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특정 세대에 개혁에 따른 희생과 양보가 집중되는 부당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개혁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되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여야와 이해당사자들의 대타협인 이번 공무원연금개혁방안은 미흡하더라도 존중해서 국회가 법안으로 전환해 시행에 나서야 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과 관련해서도 여야가 50%라는 수치를 놓고 명분쌓기식 힘겨루기를 할 것이 아니라 이를 국민연금제도 개선을 위한 고리로 활용해야 한다. 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적 기구를 구성하고 이 기구를 통해 국민연금 수급의 보편성과 급여수준의 적절성 확보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 입법화하는 것이 절실하다.
권문일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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