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민주당 빌 클린튼 후보는 집권 중이던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선거전에서 “문제는 경제다, 바보야”(It is th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1990~1991년에 미국은 경기후퇴를 경험하고 8%에 육박하는 높은 실업률을 보였다. 대선이 있었던 해인 1992년에는 경기회복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다. 클린튼 후보 진영은 이것이 부시 대통령의 경제정책 실패의 결과라는 걸 부각시키고자 이 슬로건을 제시하였다. 이 선거 전략은 적중하여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을 패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에 “문제는 ○○다, 바보야” 시리즈가 유행하였다.
만약 이 시리즈를 지금 한국에서 적용하면 어떤 슬로건을 제시할 수 있을까? 수출이 안되고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문제는 경제다, 바보야!”하는 슬로건이 나올법하다. 하지만 경제위기의 원인이 무엇이고 경제위기 극복의 길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적절치 않음을 알 수 있다.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는 경기순환 과정에서 경기후퇴기 때 겪는 위기 즉 순환적 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기존의 발전모델과 성장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서 초래되고 있는 구조적 위기이다. 폭주하는 업무의 과부하로 기능부전 상태에 빠져있는 중앙집권체제, 과잉과 과밀로 인해 집적의 효율이 사라지고 집적의 비효율이 크게 발생하고 있는 수도권 일극 발전체제가 구조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중앙집권-수도권 일극 발전체제를 지방분권-지역다극 발전체제로 대전환하는 체제개혁이 있어야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기 극복될 수 있다. 경제살리기를 위해 현 정부가 지역단위로 실현하려고 하는 창조경제도 지역이 권한과 세원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지방분권체제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 한편, 수출주도성장이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수를 확대하여 소득주도성장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 내수가 살아나려면 지역경제가 살아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중앙집권-수도권 일극 발전체제가 지방분권-지역다극 발전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발전모델의 대전환은 중앙집권국가를 지방분권국가로 바꾸는 국가 개조가 있어야 가능하다. 중앙집권국가를 지방분권국가로 개혁하려면 반드시 중앙집권적인 현행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 헌법에는 전체 130개 조항 중 지방자치 조항이 단지 2개 조항뿐이다. 더욱이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만 조례를 제정할 수 있게 규정해 놓았다. 조세법률주의 때문에 지자체는 세목과 세율을 정할 수가 없다. 때문에 지역 발전을 위한 독자적 제도 설계를 할 수 없다.
지방분권 개헌 없이도 정부에서 지자체로 대폭 사무 이양을 하고 지방교부세율이나 지방소득세와 지방소비세율을 높이면 지역발전이 가능하다는 생각, 개헌을 안 해도 지방자치법만 개정하면 지방분권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중앙집권적 현행 헌법의 강한 제약을 과소 평가하고 있다.
사무 이양에 대응한 재원 이양을 반드시 하도록 헌법에 규정하고, 지방정부가 조례로 세목과 세율을 정할 수 있는 ‘지방세 조례주의’를 헌법에 명시하며, 지방정부가 ‘법령의 범위 내에서’가 아니라 ‘법령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례를 제정할 있도록 헌법 117조를 개정하는 개헌이 없이 지방자치 확대를 바라는 것은 망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망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제는 개헌이다, 바보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개헌을 하지 않고도 법률만으로 지방분권국가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도 그런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방분권 개헌을 하지 않고도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말을 던지고 싶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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