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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이 나오기까지… 그 책에 바쳐진 마르크스와 연상 아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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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이 나오기까지… 그 책에 바쳐진 마르크스와 연상 아내의 삶

입력
2015.05.1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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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본 메리 게이브리얼 지음ㆍ천태화 옮김 모요사 발행ㆍ992쪽ㆍ4만2,000원
사랑과 자본 메리 게이브리얼 지음ㆍ천태화 옮김 모요사 발행ㆍ992쪽ㆍ4만2,000원

1831년 열일곱의 예니 폰 베스트팔렌은 독일 트리어 지방에서 가장 매력적인 아가씨였다. 사교계에서 만난 젊은 장교 카를 폰 파네비츠의 청혼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그녀는 몇 달 후 사회 관습을 어기고 파혼해버렸고, 실의에 빠져 낭만주의 문학 음악 철학에 몰두한다. 당시 유럽을 휩쓸던 낭만주의의 핵심은 ‘지고의 선, 이상을 위해 사는 것’이었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꿈을 좇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아내와 딸, 후원자이자 동지인 엥겔스가 없었다면 '자본론'은 세상에 빛을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1864년 마르크스(맨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딸 예니헨, 엘레아노르, 라우라, 엥겔스. 모요사 제공
마르크스의 아내와 딸, 후원자이자 동지인 엥겔스가 없었다면 '자본론'은 세상에 빛을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1864년 마르크스(맨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딸 예니헨, 엘레아노르, 라우라, 엥겔스. 모요사 제공

이렇게 낭만주의에 심취해 있던 1835년 어느 날, 예니는 동생 에드가의 친구 카를 마르크스가 쓴 호연지기 충만한 글을 읽게 된다. ‘직업 선택에서 우리를 이끌어야 할 중요한 기준은 인류의 복지와 우리 자신의 완성이 되어야 한다.’ 이듬해 두 사람은 결혼에 동의했고, 4살 연하의 카를이 25살이 되던 1843년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감행한다.

워싱턴과 런던 로이터통신 편집자로 활동한 메리 게이브리얼이 쓴 이 책은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 이야기를 담은 전기물이다. 오늘의 마르크스를 있게 한 ‘자본론’이 아니라 그 책에 바쳐진 한 가족의 삶을 추적한다.

두 사람이 결혼한 1843년부터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하기 시작한 1851년까지 자식 넷 중 둘이 영양결핍으로 죽었을 만큼 이 가족은 빈곤에 익숙해져 있었다. 1850년 남편 마르크스의 연구를 지지하기 위해 예니는 시어머니의 제부인 리온 필립스를 만나지만 문전박대만 당하고 돌아온다. ‘저는 모든 수를 다 써보았지만 그분을 설득할 수는 없었어요. 납덩이 같은 가슴으로 침대에 누워 눈물 젖은 탄식을 쏟아냈지요.’

풍문으로만 존재하는 마르크스와 하녀 렌헨과의 불륜, 그들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의 존재에 대해 저자는 ‘예니가 네덜란드에서 (필립스에게) 모욕을 당하는 동안 마르크스는 런던에서 그녀를 배신하고 있었다’며 불륜설에 무게를 둔다. ‘현존하는 편지에서 당시 렌헨의 임신과 관련된 언급은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예니가 쓴 수수께끼같은 비망록이 강력한 추측의 증거가 된다. ‘1851년 초여름, 내가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비록 그 일이 내 개인을 포함해 여러 가지로 우리의 근심을 늘리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8년 간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아일랜드 등에서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이 쓴 기록들을 모으고 분석했다.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수백통의 편지는 사랑에 달뜬 청년, 아이의 재롱에 웃는 아버지, 생활의 무게에 짓눌린 가장으로서의 마르크스를 재조명한다.

우여곡절 끝에 1867년 ‘자본론’ 출간을 눈 앞에 두었을 때, 마르크스는 지인들에게 “이것을 위해 나는 건강, 행복, 내 가족까지도 희생했습니다”라고 편지를 썼다. 마르크스의 후원자였던 엥겔스에게는 “1년 안에 나는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말한다. 그러나 ‘자본론’은 아무런 반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마르크스와 예니는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다. 예니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카를의 책에 걸어왔던 은밀한 희망까지도 이제 독일인들의 ‘침묵의 음모’로 인해 물거품이 되어버렸군요”라고 탄식한다. 10여년 후 그녀는 한 잡지사가 ‘경제학에서 교조적인 이론 틀을 깬 작품, 천문학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 중력과 물리학 법칙에 견줄만하다’는 서평을 본 이틀 후 숨을 거둔다.

백과사전만큼이나 두툼한 분량을 자랑하는 이 책은 흡사 장르소설 같은 전개 덕분에 빠르게 읽힌다. 2011년 전미도서상 논픽션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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