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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연극 ‘꽃잎’

입력
2015.05.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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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꽃잎’은 광복 70주년 및 한일 수교 50주년 특별 프로그램이다. 연극 ‘물탱크정류장’등을 통해 자신만의 에너지와 개성을 뚝심있게 진행해온 연출가 이강선의 ‘스튜디오 반(叛)’ 작품이다. ‘스튜디오 반’은 재일동포극단 신주쿠양산박의 한국사무국에서 활동하던 이강선을 대표로 서울에서 결성되었고 한국사 속 다양한 인물과 사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오며 창작극, 창작뮤지컬 및 번역극(일본)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해 주목 받아왔다.

‘꽃잎’은 영국 극작가 라본느 뮬러의 희곡 ‘특급호텔 (Hotel Splendid)’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참혹한 위안부 생활을 새로운 관점으로 제시한다. 위안부 여성들의 꿈과 삶이 그려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그 전의 위안부 여성들의 이야기와 맥통은 닿아있지만 꽃잎은 뮬러의 해석과 연출가 이강선의 재해석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극작가 뮬러가 일본에 체류하던 중 우연히 위안부 이야기를 접한 뒤 수년간 몰두해 집필한 작품으로, 일본 군대에 유린된 어린 소녀들의 삶을 호소력 있게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적 성격의 극성을 지니고 있다. ‘특급호텔’은 그 당시 실제 위안부 막사의 이름이었다.

‘꽃잎’은 역사 속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사라지는 사람들에 대한 아픔을 제시한다. 디지털 생태계의 현장 속에서 매 순간 정보나 사실이 과거로 급히 송출되는 요즘, 역사는 희미한 정보들의 무더기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 작품은 인류가 고민해야 할 폭력이라는 문제에 내밀하게 접근하고 있다. 이강선 연출은 이 부분에 자신만의 내시경을 들여보낸다. ‘꽃잎’은 이제 위안부 여성의 테마는 일본이라는 가해자의 위안부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위안부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문제는 국제적인 인권, 여성, 평화의 문제로 인류의 공동선 추구를 위하여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이 시대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강선은 작품을 통해 그들의 말이 아닌 그들의 숨소리를 끊임없이 듣고 전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공연 한번으로 모든 것을 이해했고 어떠한 성과를 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긴 호흡을 갖고 지속적이면서 집요하게 이 문제를 고민하고 진행시켜 갈 생각이다. 정말 우리는 이 문제를 진중하게 접근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그의 말처럼 위안부 여성의 이야기는 저쪽의 사죄나 고해를 받아내는 것 못지 않게 이제는 우리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들의 아픔을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감정의 사치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아픔을 앞에 두고 그들의 숨소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대에 등장하는 항아리들은 이 작품의 가장 구체적이고 미학적인 구조물이다. 항아리는 그들의 ‘숨소리’를 담고 있고 그들의 숨소리를 가장 잘 담아낸다. 이강선 연출은 항아리의 이미지와 움직임, 놀이를 통해 이 들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공감시키고 있다.

1943년경, 일본의 ‘특급호텔’로 소녀들이 끌려온다. 거친 숨소리, 울음 소리, 피로 물든 처참한 고통의 나날들이 이어져 가는 특급호텔. 금순, 옥동, 보배, 선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속에서,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며, 고향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나가고 있다. 소녀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인간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연민을 포기하면 안 된다. 사라지는 자리들이 남기는 아픔이 곧 역사이기 때문이고 인간이 떨림을 지속해온 방식이기 때문이다. ‘꽃잎’의 한 여성은 말한다. “난 다리들 사이에서 붉게 물든다. 피처럼 빨간 내 꽃술”이라고. 4월 국립극장을 시작으로 5월 하남문화예술회관, 8월 구로아트밸리에서 연이어 공연된다.

김경주 시인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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