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로 올려라, 40%도 벅차다….’
국민연금 공방의 핵심에 있는 게 바로 저 숫자입니다. 50이냐, 40이냐는 명목 소득대체율로, 2008년 단행된 2차 연금개혁 때 수립된 현행 국민연금 체계에서는 2028년까지 명목 소득대체율을 40%까지 낮추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명목 소득대체율 40%는 40년 동안 국민연금 보험료를 낸 사람의 월평균소득이 100만원인 경우, 은퇴 후 매달 40만원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요즘 회사를 40년이나 다닐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취업은 늦어지고 은퇴는 빨라지는 현실에서 기껏해야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기간은 20년 남짓입니다. 실제 가입기간이 20여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명목’소득대체율보다 ‘실질’ 소득대체율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올해 실질 소득대체율은 23% 수준입니다. 자신이 벌던 평균 소득의 23%에 해당하는 연금만 가지고 생활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연금체계에서는 노인도 일을 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식에게 용돈을 받거나 따로 저축이 있어 쪼개 살아야 하는 형편이란 말이죠.
그런데, 이 명목 소득대체율마저 실제보다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권문일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국민연금 지속가능성과 적절성의 균형:진단과 대안’ 자료를 15일 한국사회보장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입니다. 권 교수는 “OECD에 보고된 우리나라 평균소득을 대입할 경우 40년 가입 기준 명목 소득대체율은 32%로 떨어진다”며 “은퇴 후 받는 돈이 지나치게 작아 연금의 기능인 노후 빈곤 방지의 구실을 못한다”고 말합니다. 명목 소득대체율이 떨어진다면 곧 실질 소득대체율도 23%보다 아래로 떨어질 것이란 말입니다.
▦국민연금 산정공식
1.395×(A+B)×(1+0.05n/12)
국민연금은 내가 얼마를 받을지 따져볼 수 있는 산정공식이 있습니다. 1.395×(A+B)×(1+0.05n/12)가 그것인데요, 문과 출신으로 수학포기자였던 기자도 처음엔 이 공식까지 봐야 하나 한숨을 쉬었으나, 따져보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임금 구간별로 국민연금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계산할 필요는 없지만, 공식을 뜯어보면 국민연금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 그 구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선 숫자와 알파벳 부분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B는 자신의 가입기간 중 월평균소득이고, n은 20년 이상 국민연금 가입 개월입니다. n이 20이 안되면 0이 되기 때문에 20년 이하 가입자는 ‘1.395×(A+B)’라는 간단한 수식으로 연금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산정공식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 소득대체율 비례상수(1.395)와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최근 3년간 월평균 소득을 뜻하는 ‘A값’이 있습니다. B와 n이 개인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면, 상수와 A는 둘 다 개인소득과 상관없이 움직이는 사회적 산물입니다. 상수와 A는 즉 내 연금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적 영역이라는 뜻이죠.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소득(B값)에 따른 보험료가 높고 가입기간이 길수록, 나중에 돌려받는 연금액이 많아집니다. 소득대체율을 산정할 때 개인 변수 외에 전체 가입자의 최근 3년간 월평균 소득(A값)을 반영하는 까닭은 애초에 국민연금이 많이 버는 사람은 조금 덜 받고, 저소득자는 좀 더 많이 받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례상수는 소득대체율을 어떻게 정해놓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한마디로 계산을 맞추기 위한 숫자입니다. 이 상수는 2.4(1988년 국민연금 재정 당시부터 1차 연금개혁이 있던 1998년까지)에서 1.5(2차 연금개혁 단행한 2008년)로, 그리고 이후 매년 0.015씩 낮아져 2028년에는 1.2로 낮아지게 됩니다.
▦A값 *매년 변동
204만4,756원(2015년 3월~2016년 2월)
‘A값’을 설명하겠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은 매년 가입자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A값을 계산해 그 해 3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결정액을 제시합니다. 현재값은 204만4,756원이죠. 그런데 과연 이 액수가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소득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대졸 초임도 200만원이 넘는데, 몇십년씩 일한 사람들이 포진해 있는 국민연금 평균소득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낮아 보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전체가입자의 평균소득을 따질 때 소득상한선(408만원)을 적용해 그 이상 소득자의 수입도 408만원으로 간주합니다. 또 지역가입자인 자영업자들은 세금 때문에 소득을 낮춰 신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그대로 쓰기 때문에 A값과 실제 연금가입자들의 소득수준에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권 교수는 국민연금공단이 산정하는 A값 204만원 대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보고한 우리나라 근로자의 월 평균소득을 320만원(연간 3,850만원)을 대입해보니, 40년 가입기준 소득대체율이 32% 수준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권 교수는 현 제도하에서 인위적으로 꿰어 맞춘 소득으로 이를 우리 국민 평균 임금이라고 보고, 수식에 대입하는 게 적당치 않다고 주장합니다.
A값이 전체 연금가입자를 대표하는 소득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은 연금학자들이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연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제 와서 이걸 발견했을 리는 없지요. 하지만 섣불리 A값을 바로잡을 수 없는 속사정도 있습니다. A값을 현실에 맞게 상향 조정하면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 매달 우리가 내고 있는 보험료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사업주와 절반을 나눠 내는 직장인과 달리 자영업자의 경우 보험료 9%를 혼자 부담해야 하는데 지금보다 더 보험료를 걷는다면 반발이 클 것”이라고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전망했습니다. 대신 “고소득자 상한액을 높이고 대신 연금수령 상한선을 둬 제한하는 게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1,000만원을 벌어도 408만원으로 소득을 잡는 시스템에서 상한선을 408만원 이상으로 잡자는 것입니다. 현재 공무원연금 소득 상한선은 715만원입니다.
그러나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조금 다른 생각입니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 가입자의 15% 정도 되는 408만원 이상 고소득자에게 더 부담을 지우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이나, A값을 바로 잡아도 대다수 가입자의 보험료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소득파악이 제대로 안 되는 지역가입자들이 거의 자영업자라는 전제도 엄밀히 따져보면 다를 것”이라며, 지역가입자 중 실제 가게를 꾸려 운영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수입을 축소 신고하는 고소득 임대업자들도 상당수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A값 현실화는 중요한 논의이나 아직 본격 논의가 되지 못한 부분이라며, 아직까지 A값이 부상하지 않은 이유는 국민연금 논란이 명목 소득대체율 수치 논란에 함몰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A값은 아직 터지지 않은 폭탄이나 마찬가지”라는 김 교수의 설명이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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