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비백산 예비군들 발자국
긴박했던 당시 상황 짐작케
초유의 예비군 총기 난사 사고 발생 하루 만인 14일 찾은 서울 내곡동 소재 52사단 210연대 현장은 처참했다. 사로 곳곳에 검붉은 혈흔이 어지럽게 흩뿌려져 있었고, 주변엔 핏빛으로 얼룩진 군화와 방탄모 등이 널부러져 있었다. 시멘트 도로 위엔 피 묻은 군화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짐작케 했다.
사고 현장은 위병소로부터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1km 쯤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시멘트 도로에서 가파른 돌계단으로 이어진 오른쪽 언덕 위에 ‘동원훈련사격장’이라는 초록색 간판이 서 있었고 사격훈련장은 중앙의 사격통제탑과 좌우의 10개 사로로 구성돼 있다. 가슴 높이로 쳐진 노란색 헌병 폴리스라인을 뚫고 좌측 사로로 들어가는 순간 전날 끔찍한 사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최씨가 총을 난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1사로 총기 거치대엔 여전히 피가 흥건했다. 신문지 한 면으로 가릴 크기의 검붉은 피가 웅덩이처럼 고여 있어, 파리 떼가 들끓었다. 총기 거치대 뒤쪽으로는 귀마개와 요대에 결속된 수통, 탄피받이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방탄모도 사격통제선 안쪽에 뒹굴고 있었다.
처음으로 최씨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부사수가 쓰러진 자리 앞엔 주인을 잃은 군화 1쌍과 방탄모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헌병 관계자는 “간부와 군의관, 의무병이 피해자에 대한 응급처치를 하는 과정에서 신체를 압박하던 장구류를 풀어야 했기 때문에 군화나 요대가 흐트러져 남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사로 총기 거치대 주변에도 상당한 양의 피가 마르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엎드려 쏴’ 자세로 몸을 낮추고 있는 상태에서 왼쪽 머리를 관통 당한 고인의 군화 한 짝은 세워진 채로, 또 다른 한 짝은 쓰러진 채였다. 최씨가 조준사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되는 5사로에도 사수 자리부터 부사수 자리까지 혈흔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시멘트 블록 위에 떨어진 핏자국 중에는 선명한 군화 자국도 남아 있었다. 최씨가 총격을 가하는 10초 동안 나머지 예비군들이 혼비백산하며 가파른 경사를 가로질러 뛰어가면서 생긴 군화 자국으로 추정됐다.
52사단 관계자는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자행한 살인의 현장이다.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일반 부대의 20%에 불과한 동원부대 병력으로 이런 돌발 행동을 제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국방부 공동취재단ㆍ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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