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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24년 만에 벗은 누명… 삶은 나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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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24년 만에 벗은 누명… 삶은 나락으로

입력
2015.05.1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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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자살방조죄로 3년 옥살이

출소 후 가정 꾸리고 일 가졌지만

주위 시선ㆍ트라우마로 고통

3년 전부터 간암 투병 병세 심각

1991년, 27세 청년은 운동권 동료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부추겼다는 검찰과 법원을 향해 “결백하다”고 절규했다. 유서의 필적(筆跡)이 청년의 것과 같다는 감정 결과는 조작 의혹이 강했으나, 법원은 청년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사법부는 꼬박 24년이 지나서야 이젠 50대가 돼버린 과거의 청년에게 ‘당신은 결백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철저히 망가진 삶에 대해 누구 한 명 사과하는 이 없고, 그토록 사과를 바랐던 그는 병을 얻어 자신의 무죄 선고 현장도 찾지 못했다. *관련기사 4면

이른바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주인공인 강기훈(51)씨에 대한 무죄가 확정됐다. 14일 오전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판결이 있던 서울 서초동 대법원 1호 법정은 이날 오전부터 강씨의 재심을 기다리는 방청객들로 가득 찼다.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선고를 기다리던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시민모임) 회원 20여명은 김창석(59) 대법관의 “검사 상고를 기각한다”는 주문이 끝남과 동시에 낮게 환호하며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강씨는 정작 극심한 스트레스와 간암 병세로 인해 감격의 현장에 참석하지 못하고, 연락도 닿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린 강씨 사건은 1991년 수사 당시부터 공안당국의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그 해 5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서강대 옥상에서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하자 동료인 강씨를 배후로 지목했다. 강씨는 국과수의 필적 감정결과 등에 따라, 그 해 7월 자살방조죄로 재판에 넘겨져 이듬해 징역 3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국과수는 12년이 지난 2013년에야 당시 감정이 잘못됐다고 인정한다.

1994년 8월 만기 출소한 강씨는 가정을 꾸리고 다양한 일을 하기도 했지만, 직장 동료 등 주변인들의 시선과 사건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사회와 점점 멀어졌다. 2012년 간암 판정을 받은 강씨는 수술에도 불구 이듬해 5월 재발돼 현재까지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모임 소속 회원들은 14일 선고 후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와 검찰이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는 것에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강씨의 무죄는 당연한 결과”라며 “강씨 사건의 날조와 조작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고, 국민을 속이고 기만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강씨의 변론을 맡았던 송상교(43) 변호사는 “법이 정한 엄격한 법률위반 사유가 있지 않음에도, 검찰은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에 이례적으로 대법원에 재항고를 했었다”고 비판하며 “강씨의 무죄가 확정된 만큼 앞으로 이 사건을 유서대필 사건이 아닌 ‘유서대필 조작사건’으로 명명해달라”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이어 “무고한 시민이 유서를 대필했다는 ‘주홍글씨’를 24년 간 안고 살게 된 것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묻는 작업을 변호인단과 함께 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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