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ㆍ복장의 자유, 체벌금지 등을 규정한 학생인권조례는 유효하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보충수업ㆍ야간자율학습 강제 금지 등 학생 인권신장 관련 정책이 탄력을 받고 학칙 제ㆍ개정 등에 학생 참여나 의사 개진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4일 교육부장관이 전라북도 의회를 상대로 낸 학생인권조례 무효확인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먼저 “인권조례는 헌법과 관련 법령에 의하여 인정되는 학생의 권리를 확인하거나 구체화하고 그에 필요한 조치를 권고하고 있는 데 불과한 이상 그 규정들이 교사나 학생의 권리를 새롭게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전제했다. 이어 “따라서 국민의 기본권이나 주민의 권리 제한에 있어 요구되는 법률유보원칙(기본권 제한은 법률에 근거하도록 하는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고, 그 내용이 법령의 규정과 모순ㆍ저촉돼 법률우위원칙에 어긋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교육부는 2013년 7월 전북도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의결하자 상위법 위반이라며 전북교육청에 재의를 요구했고, 전북교육감이 이를 거부하고 조례를 공포하자 대법원에 무효확인소송을 냈다. 지방자치법상 교육부장관은 교육감이 재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대법원에 직접 제소할 수 있으며, 소송은 대법원 단심 재판으로 끝난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서울, 광주, 전북 등 네 곳에서 시행하고 있다. 4개 교육청의 조례안은 체벌금지, 두발ㆍ복장의 자유, 보충수업 등 교육 강요 금지, 소지품 검사 금지, 정당한 학습권, 휴식을 취할 권리 등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인권을 학습하고 교사 및 학생 등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있다. 대법원은 2012년 교육부 장관이 같은 이유로 서울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 제기한 무효소송에서는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내용 판단 없이 각하 결정했다.
정옥희 전북도교육청 대변인은 이번 판결에 대해 “학생인권조례는 교권과 대립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의 기본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인 만큼 당연한 결정”이라며 “실질적으로 학생 인권이 보장되는 교육내용과 방법을 지원하도록 힘쓰겠다”고 환영했다.
대법원 판결로 학생인권조례가 교사의 교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인식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의 교원단체와 보수 시민단체는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교권이 침해돼 교사들의 사기 저하와 공교육 부실까지도 연결된다며 맞서왔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박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학생인권조례의 취지는 학교 구성원끼리 갈등을 줄이고 공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며 “이를 교권과 충돌한다고 보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상호 보완개념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 추가 제정 움직임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은 학생 인권이 학교에서 존중 받으려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현재 진보 교육감이 있는 지역이 13곳인 것을 감안하면 나머지 9곳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추가 지정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강원도교육청은 올해 3월 강원도의회의 반대로 좌초됐던 학교인권조례를 다시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법적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른 교육청이 추가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면 다시 법적 대응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패소한 내용 이외의 부분에서 상위법령 위반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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