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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기억] ‘큰 손’ 장영자 첫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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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기억] ‘큰 손’ 장영자 첫 재판

입력
2015.05.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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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투쟁의 희생양이란 말이 처음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다. 1980년대, 명문여대 메이퀸 출신으로 ‘큰 손’이라 불리던 장영자가 천문학적인 어음 사기사건으로 정국을 뒤흔들며 내뱉은 말이다. 서슬 퍼런 5공 시절이었던 1982년, 정의사회구현을 기치로 내걸었던 전두환 정권에 치명타를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대통령 처삼촌의 처제였던 장영자가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 남편 이철희와 함께 사채시장을 통해 7,000억 원에 육박하는 사기 행각을 벌인 것이다. 단순한 미화 은닉 혐의가 건국이래 최대 금융사기사건으로 확대되면서 당대의 실세였던 전두환의 처삼촌 이규광과 은행장 둘, 그리고 기업인 등 30여 명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교도소 생활 10년 만에 가석방으로 출소한 장씨는 94년, 차용사건으로 또 한번 감옥을 다녀왔고 2000년 들어 구권화폐 사기극에 연루돼 재판을 받다 2006년부터 10년 형을 치른 후 지난 1월 만기 출소했다. 30대 후반, 미모와 권력을 바탕으로 정관계를 주물렀던 그도 세 번의 옥고 끝에 이젠 71세의 할머니로 변하고 말았다. 1982년 5월 17일 구속된 장영자가 수의를 입고 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손용석 멀티미디어부장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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