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마침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성완종 리스트 연루 의혹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17일 만이다.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총리로서 불과 2개월 전 대국민 담화까지 발표하며 서슬 퍼렇게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던 이 전 총리다. 그런 그가 비리의혹에 휩싸인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 포토 라인에 선 모습을 보고 많은 국민들은 착잡하고도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역대 총리 43명 중 14번째로 검찰 조사를 받는 전직 총리가 됐다. 어떤 사유에서든 총리 출신이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헌정사의 불행이다. 더욱이 이 전 총리는 성 전 경남기업회장으로부터 불법 선거자금을 받은 의혹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만큼 사실상 ‘현직 소환’의 의미가 있다. 국민들에게 주는 충격과 배신감이 한층 더 클 수밖에 없다.
이 전 총리는 이날 검찰 조사실로 들어가기에 앞서 취재진에게 “이 세상에 진실을 이기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결연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물론 유무죄 여부는 검찰 조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이 전 총리가 받고 있는 혐의는 2013년 4월 충남 부여ㆍ청양 재보궐 선거 기간 성 전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 현금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성 전 회장이 직접 선거사무소를 방문해 현금을 전달했다는 정황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이 전 총리는 당시 성 전 회장을 단둘이 만난 사실 자체부터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감에 찬 이 전 총리의 ‘진실’ 강조는 불편하다. 핵심 혐의의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그는 그 동안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잦은 말 바꾸기와 과도한 부인으로 국민들의 불신을 키운 게 사실이다. 성 전 회장과의 관계만 해도 처음엔 개인적 친분이 없다거나 전혀 친하지 않다고 했다가 동석한 사진들이 다수 공개되고, 두 사람이 빈번하게 만났다는 증언이 잇따르자 자주 접촉하고 의견도 나눈 사이였음 마지못해 시인했다. 그의 ‘진실’이 곧이곧대로의 진정성보다는 핵심 의혹 제기자의 사망으로 수사의 불가피한 한계를 판단한 발언으로 들리는 이유다.
당시 이 전 총리가 만약 성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도 말한 것도 국민들의 불신을 키운 오버였다. 결백을 강조하려는 과장 어법이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협박으로 받아들였다. 어쨌든 이제 공은 검찰에 넘어가 있다. 검찰이 어떤 정치적 고려 없이 증거와 정황에 입각한 철저한 조사로 진실을 가려 냄으로써, 이 전 총리에 대한 수사가 더 이상 이런 비극적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는 정치문화 개선의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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