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퍼즐 같은 3개의 에피소드, 커튼콜 올라갈 때 쯤 고개 끄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퍼즐 같은 3개의 에피소드, 커튼콜 올라갈 때 쯤 고개 끄덕

입력
2015.05.14 16:27
0 0
연극 '스피킹 인 텅스'의 부제는 '잃어버린 자들의 독백'. 작품 속 인물들의 방언은 언제나 상대방에게 가 닿지 못한다. 남편 존이 끝내 받지 못한 발레리의 전화처럼. 수현재컴퍼니 제공
연극 '스피킹 인 텅스'의 부제는 '잃어버린 자들의 독백'. 작품 속 인물들의 방언은 언제나 상대방에게 가 닿지 못한다. 남편 존이 끝내 받지 못한 발레리의 전화처럼. 수현재컴퍼니 제공

단지 4명의 배우가 나오는 연극 시놉시스가 얼마나 복잡할 수 있을까. 연극 ‘스피킹 인 텅스’를 소개한 프로그램북을 읽고 또 읽으며 관객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2시간짜리 연극은 4명의 배우가 9개의 캐릭터를 소화하며, 각각의 에피소드는 이어지면서도 개별적으로 전개된다. 인물의 관계도는 보고 또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커튼콜이 올라가고, 박수를 칠 때에야 관객은 비로소 ‘아 그래서 프로그램북이 그렇게 쓰였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작품 제목인 ‘스피킹 인 텅스’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방언. 인간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하고 있고 이 방언은 맥락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해석되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소통부재로 소외를 경험한다는 고백을 옴니버스로 그린 작품이다. 희곡, 시나리오작가 앤드류 보벨이 쓴 이 작품은 1996년 호주에서 초연된 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꾸준히 공연됐고, 2003년 런던비평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심하고 꼼꼼한 남자 피트는 술집에서 쏘냐를 처음 만나 싸구려 모텔방으로 간다. 잘 나가는 마누라에 치여 살던 지역 형사 레온도 술집에서 제인을 처음 만나 싸구려 모텔방으로 간다. 사실 피트의 아내는 제인, 쏘냐의 남편은 레온이다. 말하자면 두 쌍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스와핑을 시도하고 있었던 셈.

드라마 ‘사랑과 전쟁’ 같은 1막은 독특한 극적 구성에 힘입어 수작으로 승화된다. 객석 불이 꺼지고 맨 먼저 무대에서 관객을 맞는 건 똑같은 사이즈의 더블침대. 불륜을 앞둔(?) 두 쌍의 남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똑같은 대사를 서로 주고받는다. 각자의 침대 위에 걸터 앉은 두 여자가 동시에 “당신 아내, 이름은 뭔가요?”라고 물으면 다시 두 남자가 동시에 “그런 게 왜 궁금하죠?”라고 되묻는 식이다. 데칼코마니 같은 대사는 이따금 변주된다. “나가고 싶어요?”라는 두 여자의 물음에 한쪽 남자는 “다른 데로 갈까요?”라고, 다른 공간의 남자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한 쌍은 불륜에 성공하고, 다른 쌍은 불륜에 실패하지만 각자가 경험하는 소통 단절과 소외감은 거기서 거기다.

“이야기는 앞으로만 향해 가지 않는다. 옆으로 튀거나 역행하기도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각각의 에피소드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2·3막에선 1막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나왔던 인물들이 실체를 갖추고 등장하는데, 그들 관계 역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단절을 겪는다. 정신과의사 발레리의 실종사건을 다룬 2막, 발레리가 사라를 상담하는 3막에 이르면 각각의 이야기는 퍼즐처럼 짜맞춰진다. 때문에 잠시라도 무대에서 눈을 돌리거나 다른 생각을 하면 그 흐름에 다시 동참하기가 힘들다.

쏘냐와 발레리 역을 맡은 전익령은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특히 2막 공중전화 장면에서 발레리가 대사만으로 섬세한 감정변화를 표현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7월19일까지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02)766-6506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