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고통 시각적 효과로 표현"
여성 관점의 전쟁 주제 작품 준비
“아시아 여성, 그것도 한국 여성들의 노동 실태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줄 몰랐습니다. ‘위로공단’이 우리 어머니들의 과거와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9일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 본 전시에서 한국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46) 감독이 14일 서울 동작구 골든시네마 메가박스에서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임씨의 수상은 한국 최초의 은사자상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35세 미만 젊은 작가에게 은사자상을 주던 관행을 깨고 수상한 점, 한국 작가로는 6년 만에 본 전시에 초청된 점 등 두루 화제가 됐다. 전시 총감독에 의해 구성되는 본 전시는 베니스비엔날레의 핵심으로, 총감독이 직접 초청한 작가만 참석할 수 있다. 임씨는 “지난해 12월 작가 리서치를 위해 방한한 오쿠이 엔위저(52·독일 하우스데어 쿤스트 디렉터) 총감독을 처음 만났다”며 “대학에서 정치를 전공해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 ‘위로공단’을 보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고 말했다.
90분짜리 영상작품인 ‘위로공단’은 공장근로자, 감정노동자 중 특히 여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에 미술적 기법을 도입해 강렬한 이미지를 구현했다. 비엔날레 심사위원단은 “아시아 여성들의 노동조건과 관계된 불안정성의 본질을 섬세하게 살펴보는 영상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임씨의 수상 직후 그의 어머니가 의류공장의 ‘시다’로 일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보도가 쏟아져나왔다. 이에 대해 임씨는 “모두 사실이며, 실제 작업의 원동력이 됐다”고 답했다. “어머니께서는 40년 가까이 봉제공장에서 일하셨고 여동생은 백화점 냉동식품 매장에서, 형수님은 보험설계사로 일했습니다. 이들의 삶을 몸으로 느끼면서 들었던 미안함과 고마움의 감정이 작품의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멀게 느껴졌던 그들이 알고 보니 우리의 어머니였고 여동생이라는 메시지가, 관객들로 하여금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 질문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위로공단’은 9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편집 없이 전시장에서 그대로 상영됐다. 사회를 맡은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영화와 미술이 만나 미술영화가 아닌 전혀 다른 작품이 나왔다는 사실에 베니스가 주목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운을 띄웠다. 임씨는 “나는 미술로 출발했지만 미술과 영화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작가이자 감독”이라며 “이처럼 경계가 모호한 작업은 사회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영상 속에는 얼굴을 천으로 뒤집어 쓰거나 눈을 가린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임씨는 이를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내가 느낀 고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씨는 “앞으로 여성의 시각으로 전쟁을 보는 작품을 준비 중이며 (제주 4.3사건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다룬 영화) ‘비념’ 속편도 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7월말 일본 전시 때는 일본 작가와 함께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영상 편지의 형태로 주고 받는 작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위로공단’ 은 올 여름 경 대중에 공개될 예정이다. 오동진 평론가는 “수상으로 인해 개봉 날짜가 예정보다 당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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