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천하명당
선사시대~일제 강점기 유적 즐비
포항시, 천하의 관광명소 개발 추진
철강 산업 도시 경북 포항이 관광 산업에 눈 뜨고 있다. 포항제철소를 중심으로 철강에만 의지해 온 포항은 전 세계적인 철강 경기 하락에 새로운 지역 경제 동력을 찾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때마침 지난 4월 2일 KTX 개통으로 수도권에서 포항으로 접근성이 좋아졌다. 승용차로 포항-서울간 4시간 30분 넘게 걸렸지만 KTX 덕에 2시간 30분대로 크게 단축된 것. 포항시는 고속열차 호재를 발판 삼아 그 동안 도외시했던 관광 자원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포항에는 의외로 철강 도시 이미지에 묻혀 빛을 못 본 유적지가 즐비하다. 그 중 가장 볼거리, 즐길 거리 많은 곳이 철강 공단을 지나야 볼 수 있는 ‘호미반도’다.
호미반도는 한반도 지도에서 영일만을 끼고 동쪽으로 쭉 뻗어 나와 있는 포항 남구 동해면과 구룡포읍, 호미곶면, 장기면을 가리킨다. 호미반도는 호랑이 꼬리를 뜻하는 ‘호미(虎尾)’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을 나타내는 ‘반도’가 합쳐진 말이다. 호미반도는 본래 말의 긴 갈기처럼 생겼다고 해 장기반도로 불렸으나 2000년 1월 1일 새천년 행사를 앞두고 한반도의 동쪽 끝 장기곶이 호미곶으로 바뀌면서 호미반도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호미곶이 위치한 대보면의 이름도 호미곶면으로 변경됐다.
조선의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는 ‘동해산수비록’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러시아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된다며 호미곶을 천하명당이라고 말했다. 호랑이는 꼬리의 힘으로 달리고,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다 해 호랑이 꼬리는 국운상승과 국태민안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일제가 호미곶에 쇠말뚝을 박고 한반도를 연약한 토끼에 비유해 호미곶을 토끼꼬리라고 비하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
호미반도에는 태고의 시작과 힘찬 기운, 불, 빛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와 선사시대 유적부터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유적이 널려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삼국유사에 기록된 연오랑세오녀 설화다.
설화의 내용은 신라 제8대 아달라왕 4년(157) 동해변 살던 연오랑ㆍ세오녀 부부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 간 뒤 해와 달이 사라졌는데 놀란 사람들이 세오가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더니 다시 밝아졌다는 이야기다. 세오녀의 비단으로 제사를 지낸 곳이 포항 남구 해병대 1사단 안에 있는 연못 일월지(日月池)이다. 일월지에는 잃어버린 빛을 찾기 위해 제사를 지낸 천제단이 있었지만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파괴했다고 한다. 또 광복 후 미 군정 때 매립될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지역 유지들의 반발로 중단됐다. 포항 남구 동해면 주민들은 해마다 10월 도구리 동해초등학교 옆 일월사당에서 일월신제를 지내오고 있다. 포항시는 연오랑세오녀 설화를 담아 남구 동해면 일대 부지 면적 56,188㎡에 총 사업비 460억원을 들여 연오랑세오녀ㆍ일월 테마파크를 건설 중이다.
호미반도에는 조선시대부터 일제시대까지 말을 기르던 국영목장 터가 남아있다. 북서쪽동해면 흥환리에서 동남쪽 구룡포읍 방향으로 길게 호미반도를 가로지르는 돌 울타리 ‘말목장성’이다. 경주도회자통지도 등 고지도에도 나오는 돌 울타리는 길이 12km, 높이가 3m에 달했다. 아직까지 약 5.6km의 구간이 남아있다. 목장 내 말을 물 먹이는 못이 50군데, 말이 눈과 비를 피하는 마구 19채, 목장 내 근무 인원은 141명이었다고 한다. 말목장성은 전망대와 쉼터 등을 갖추고 약 8㎞의 트레킹 코스로 정비돼 있다.
호미반도에서 최근 가장 인기 있는 명소는 구룡포읍의 100년 전 번화가, 근대문화역사거리다. 1880년대 초 칼과 총을 차고 조선 바다를 침범한 일본 어민들이 황금 어장 구룡포로 몰려 와 집을 짓기 시작해 생겨난 적산가옥 거리다. 1930년대는 470m 거리에 220여 가구, 1,100명에 이르는 일본인이 살았다. 자동차 한 대 겨우 지나가는 근대문화역사거리에는 집집마다 이발소, 여관, 음식점, 기생집, 병원, 백화점, 극장 등 당시 모습을 알려주는 표지판과 흑백사진이 부착돼 있다. 현재 100년 전 원형을 보존한 집 30여 채 정도가 남아있다. 거리의 마지막은 일본인 하시모토 젠기치가 1920년대 초반에 세운 이층집을 새 단장한 구룡포근대역사관이다. 정갈한 정원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일본식 벽장, 바닥의 다다미, 오래된 계단과 재봉틀, 바닷바람을 막기 위한 2층 덧문과 불당 등 지금은 일본에서도 보기 어려운 100년 전 부유한 일본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에선 요즘 주말마다 일본인 전통의상 유카타를 빌려 입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호랑이 꼬리의 가장 끝 호미곶은 해맞이명소로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바다 한 가운데 불쑥 튀어나온 조형작품 상생의 손은 지난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각각 왼손과 오른손 한 쌍으로 제작돼 서로 마주보고 있다.
호미곶에는 1908년 세워진 26.4m 높이의 팔각 등대가 있다. 이 호미곶 등대는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지어진 팔각 구조물이다. 각 층의 천장에는 대한제국 황실 문양인 오얏꽃(李花文)이 새겨져 있고 출입문과 창문은 고대 그리스 신전 건축의 박공양식으로 장식돼 있다.
바로 옆에는 국내 유일 국립등대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국내외 등대의 발달사, 유물, 등대원의 생활상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호미곶 해맞이광장을 지나면 넓은 보리밭이 펼쳐진다. 너무 광활해 ‘구만리 보리밭’으로 불린다.
이처럼 호미반도의 풍경은 철강도시 포항을 새롭게 느끼게 한다. 각종 개발 사업에 밀려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호미반도가 이젠 포항의 관광산업 개발에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다.
포항시는 맹호의 기운을 받은 명당 호미반도를 천하의 관광명소로 만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1억원의 용역비를 들여 호미반도 개발 계획을 짜고 있다. 동해면과 호미곶면, 구룡포읍, 장기면까지 바닷가 절경을 감상하며 걷는 해안둘레길 조성 사업도 진행 중이다. 포항 북구 영일대해수욕장에서 남구 호미곶을 오가는 유람선 운항도 시도하고 있다.
김영철 포항시 국제협력관광과장은 “호랑이 꼬리에서 나오는 강한 추진력과 해가 솟을 때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받아 호미반도와 포항을 해양관광도시로 바꿔나갈 계획이다”며 “포항 울산간 고속도로가 조만간 개통되고 영일만 관광단지 조성도 순조롭게 진행되면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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